미국의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은 누구일까? 예전 같으면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정답이겠지만,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수장 마이클 틸슨 토머스라고 답해야 할 것이다. 흔히 ‘MTT’라고 줄여서 부르는 이 지휘자는 62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동안(童顔)의 소유자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를 미국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급부상시킨 주인공이다.
신호탄은 2001년 녹음된 말러의 교향곡 6번 ‘비극적’이었다. 하필이면 말러 시리즈의 첫 녹음과 공연이 이루어지기 바로 전날, 뉴욕에서는 우리 시대의 비극인 ‘9·11 테러’가 터졌다.
지휘자와 단원들의 심정은 얼마나 착잡했을까?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악단의 이 교향곡 연주는 같은 곡의 해석 가운데 가장 낙천적이고 밝은 편에 속한다. 비극의 상처를 벗고서 다시 떠오른 햇빛에 비교할 수 있을까. 괴팍한 조울증 환자처럼 그려졌던 말러를 일순간 세련되고 말쑥하게 탈바꿈시켰다.
마이클 틸슨 토마스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진행하고 있는 ‘말러 시리즈’는 ▲찬란한 사운드 ▲슬림한 총주 ▲치밀한 디테일 ▲선명한 녹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교향곡 1번 ‘거인’에서 트럼펫의 깨끗한 고음과 영롱한 클라이맥스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다. 교향곡 4번은 음반을 틀자마자 작곡가가 구현하고자 했던 ‘천국의 맑은 하늘’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음악교육 프로그램 ‘키핑 스코어(Keeping Score)’에서도 마이클 틸슨 토마스는 지휘자뿐 아니라 음악 해설가, 엔터테이너, 피아니스트로서 재능을 마음껏 펼친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21세기 업그레이드 버전’을 보는 기분이다. 콘서트 영상으로 넘어가면 어느새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본거지인 데이비스 홀의 화려한 모습이 보인다.
베토벤의 ‘영웅’에서는 명석한 해석을 통해 ‘무사’나 ‘호걸’의 이미지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총명한 영웅상을 선보인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은 신바람 나는 리듬감 때문에 록 음악이나 댄스 뮤직처럼 흥겹다. 영상에 반하고 소리에 취하니 이만한 호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