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妓)’자의 어원을 추적해 보면 계집 녀(女)와 초목의 가지 지(支)가 합해서 이루어진 글자이다. ‘풀이나 나뭇가지를 들고 교태를 부리는 여자’가 원래 뜻인 셈이다. 하지만 이 기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좋지 않다고 느꼈는지 이능화(李能和·1869~1943)는 기생 대신에 ‘해어화(解語花)’라는 표현을 썼다.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의미이다. 대단히 격조 있는 작명이다. 이능화는 우리나라 최초로 기생들의 역사를 정리한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라는 책도 냈다. 근래에 기생에 대해 가장 잘 정리한 이는 작가 정비석(鄭飛石·1911~1991)이다. 그는 조선일보에 1976년부터 4년간 ‘명기열전(名妓列傳)’을 실었고, 이 연재내용을 다듬어 ‘미인별곡’(美人別曲·전 6권)이란 책을 펴냈다.
우리 기생 가운데 인상 깊은 인물을 꼽아 본다면 ‘시기(詩妓)’와 ‘의기(義妓)’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기는 시(詩)를 잘 지었던 기생을 가리킨다. 서화담과의 일화를 남긴 개성의 황진이(黃眞伊)와 허균과 애절한 사랑을 나눈 부안의 매창(梅窓)이 여기에 해당한다. 황진이와 매창은 조선 여인의 지성과 예술혼을 상징하기도 한다. 의기는 의로운 일을 하고 간 기생이다. 진주성에서 왜장 게야무라를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論介)와 평양성에서 김경서(金景瑞·1564~1624) 장군과 협력해 왜장의 목을 벤 계월향(桂月香)을 꼽을 수 있다. 논개와 계월향은 조선 여인의 충절(忠節)을 상징한다.
이 4명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 바로 계월향이다. 시기로는 ‘남 매창, 북 황진이’요, 의기로는 ‘남 논개, 북 계월향’인데, 유독 계월향만 잊혀진 감이 있다. 엊그제 계월향의 초상화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초상화는 아무나 그릴 수 없었다. 나라의 충신이나 퇴계나 율곡처럼 덕망이 높은 학자, 공적이 있는 대감들이나 초상화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천민에 속했던 기생의 초상화가 남아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사대부들이 계월향의 충절을 그만큼 높이 평가했다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