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을 역임한 조지프 나이(Joseph Nye) 교수는 “6자 회담을 앞둔 지금은 햇볕정책보다는 강력한 대북 봉쇄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했던 나이 교수는 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미 간 갈등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 같은 나라는 멀리 있는 강대국(미국)을 친구로 두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이 교수는 클린턴 행정부 때 미 국방부 차관보(국제안보 담당) 등을 지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조만간 6자회담이 재개될 예정인데.
"단기적으로 대북 봉쇄가 강력하게 추진돼야 한다. 그래야 핵실험이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북한이 안다. 만약 2005년 9·19 합의대로 북한이 핵 사찰단을 받아들이면, 그때 가서 봉쇄를 조금 풀 필요가 있다."
―대북 경제 제재가 효과적이라고 보는가?
"북한이 외화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경제 봉쇄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또 중국측 고위 관리는 중국 정부가 조용히 중국 기업들에게 대북 투자를 줄이라고 지시했다고도 밝혔다. 북한이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중국은 에너지, 한국은 금강산 등 대북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 6자회담을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게 북한의 전략이다. 한국이 대북 지원을 계속 하면, 북한이 왜 태도를 바꾸겠는가."
―미국은 한국, 중국의 대북 압박 수준을 어떻게 보나?
"미국은 한국과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하지만, 두 나라는 꿈쩍도 않는다. 두 나라가 북한을 압박하지 않으면, 시간은 북한 편에 있다. 한국과 중국은 이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마찰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매우 심각하다. 두 나라 행정부가 따로 간다. 그나마 부시 행정부 2기부터 좀 나아졌고, 2008년 미 대선 이후에는 달라질 것이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386세대보다 반미(反美) 감정이 적다는 얘기를 들었다. 만약 세대 간 변화가 있고, 미국에서 정권이 바뀌면 미래에 희망이 보인다."
―동북아에서 중국의 경제·군사적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데, 한국은 장기적으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나?
"한국은 항상 중국·일본 사이에 끼어 있었고, 이 경우 전략은 멀리 있는 강대국을 친구로 두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그런 전략을 썼다. 영국은 1·2차 대전 직전에 독일의 급부상에 신경을 써야 했다. 또 19세기에 미국과 남미에서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나중에 독일·러시아와 맞서게 되는 상황을 예상하고, 미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영국은 미국과의 영토 분쟁을 포기했다. 이런 '냉정'은 유효했다."
―한국인 중에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용인하고, 나아가 통일되면 결국 '우리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은데.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통일 한국이 북한핵을 인수하기까지에는 북한이 어떻게 붕괴되느냐, 누가 핵무기를 통제할 것이냐, 북한 군부 내 갈등은 없을 것이냐 등등 많은 변수가 있다. 군부에서 갈등이 발생해, 핵을 테러범에게 팔 수도 있다. '암(暗)시장' 장사꾼들이 끼어들 수도 있다. 파키스탄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A Q 칸 박사가 북한에 핵프로그램을 팔지 않았나. 북한 붕괴가 시계바늘처럼 예정된 순서를 따라 낙관적으로 진행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역사는 낙관적으로 흐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어쨌든 궁극적으로 한국이 핵을 보유하는 게 나쁜가?
"일본이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해 보라. 중국과 한국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데…. 핵 보유국이 늘어날수록 오판 확률은 높아진다. 결국 가장 확실한 것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사찰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 독자 행사에 대한 생각은?
"한국군이 전작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것 자체는 한미 동맹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한국 내에서 민족주의와 자주국방이 부각되는 것은 단기적으로 '정치적 이득'이 될지 몰라도, 한국의 국익엔 도움이 안 된다."
―주한 미군이 철군할 경우, 예상되는 상황은?
"모든 시장경제는 안정적인 안보체제를 바탕으로 번성한다. 한국의 번영은 안정적인 동북아 안보체제 덕분이다. 미군이 철수하면 동북아 안정은 어떻게 될 지 모른다. 북한이 침공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는 힘들지만…. 북한은 과거에도 이상한 행동을 해왔다. 훌륭한 안보전략가는 확률은 낮아도 리스크가 큰 일이 발생하지 않게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미국 없이 얼마든지 한국이 자주국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 대가가 클 것이고, 위험이 뒤따른다. 중국이 북한과의 동맹을 맺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과의 군사동맹 없이 혼자 남는다면, 북한을 억지하기 위한 군사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중국을 미국의 잠재적 적대국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미·중 관계를 잘못 다루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것이다. 일부에선 양국 간 무력 충돌 등 갈등 가능성을 언급하지만, 현재 양국 지도자들은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
―동북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가?
"약간의 가능성은 있다. 타이완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이 오판할 수 있다. 또 한·일, 중·일 간에도 섬을 놓고 충돌할 수 있다. 유럽의 전쟁 발발 가능성은 제로(0)다. 동북아는 제로가 아니다. '약간의 가능성'과 '확률 제로'는 엄청난 차이다. 미군의 존재가 이 가능성을 상당히 낮춰주고 있다. 아시아의 평화는, 유럽보다 이 지역과의 무역량이 더 크고 역시 태평양 국가인 미국에게도 중요하다. 미국은 아시아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