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 신임회장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만난 것은 아니다. 차승재(47) 싸이더스 FNH 대표. 정작 본인은 “초등학교 이래 반장 한 번 못해봤다. 생애 최초의 감투”라며 코끼리 같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한 영화인은 이런 비유를 던졌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전경련 회장이 된 경우”라고.
단순한 허풍만은 아닌 것이, 2006년 싸이더스가 제작한 한국영화(총 12편)가 끌어들인 관객 수는 1700만명. 2006년 총 관객 수가 약 1억6385만명(외화 포함)이니 무려 10%가 넘는 점유율이다. 편수와 관객 수 양쪽 모두 국내 제작사 중 으뜸. 작년의 이 ‘거침없는 하이킥’에는 물론 일부 헛발질도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이름만으로 신뢰를 받는 몇 안 되는 제작자 중의 한 명이다.
30일 인터뷰에서 차 회장은 영화계의 다양한 현안들을 가로지르며 거침없는 주장을 털어놨다. 그는 2006년을 “지난해는 돈을 태우는 게임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요약했다.
순 제작비 30억 쓰고 마케팅비 20억 들여서 50억짜리 상업 영화 만드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것. 그는 "이 영화로 손익분기점 맞추려면 147만명이 들어야 하는데, 그게 쉽냐"고 반문하면서 "올해에는 싸이더스부터 순 제작비를 20억대 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스태프 인건비를 더 줄일 수는 없으니, 결국 기획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 작품 규모도 줄이겠단다.
전년 대비 82.8%나 줄어버린 일본시장 등 수출문제에 대해서는 "이제 연애는 끝나고 결혼만 남았다"는 흥미로운 표현을 썼다. '붐'은 사라졌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영화에 대한 사랑은 굳어지고 있다는 것. 차 회장은 "바가지로 비싸게 팔 생각 말고, 끊임없이 파는 게 중요하다"면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그리고 2010년 지적재산권 유예 종료 등 중국 시장에서도 이 시점 이후에는 돈을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적 기대를 했다.
그는 스크린 쿼터 축소 이후 정부가 발표한 영화계 4000억 지원안에 대해서도 영화계 매파들과는 조금 다른 목소리를 냈다. 차 회장은 "이미 올해 초 영진위에 1000억원이 내려왔다고 들었다"면서 "구태여 이 돈을 쿼터 축소와 맞바꾸는 대가로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쿼터가 원상회복되었으면 좋겠지만, 어쨌거나 축소된 것은 사실이고, 또 우리가 반대한다고 해서 돈이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이면서.
사실 이날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이익단체인 제협 대표로서의 주장이다. 오래된 현안인 부율(입장료 수입을 극장과 배급·제작사가 나누는 비율)의 5:5 환원 문제(현재는 관람료 중에서 극장이 6, 제작사가 4를 가져간다)는 물론, 유명 감독과 톱스타들의 횡포에 대한 비판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제작사 이익 중에서 톱스타는 15%, 유명 감독은 무려 50%나 수익 배분을 요구한다는 것. 그는 "우리가 떼돈을 벌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고 전제한 뒤, "제작사는 공장이고 밭이고 엔진인데, 우리가 망하면 어떻게 영화를 재생산하겠느냐"면서 "솔직히 그렇게까지 자신의 지분을 주장하는 배우나 감독들이 부끄러운 마음이 들도록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 차 회장의 몇 년 전 발언 하나를 끄집어냈다. "일본 영화계는 노인네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데 한국은 젊은 세대가 이끌면서 르네상스를 가져왔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그 비판을 던져봐야 하는 시점 아니냐고 직설화법으로 물었다.
40대 후반의 차 회장은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중국 속담을 인용하더니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30대 후배 프로듀서들도 차츰 경쟁력을 갖출 것이고, 자연스럽게 우리도 도태될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동시에 후배 프로듀서·제작자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 영화를 꿈보다는 비즈니스로 본다는 것. 심재명 이은 오기민 등 10~15년차 된 동년배 프로듀서들의 이름을 죽 열거하더니 "우리들 중 영화판에 뛰어들 때, 돈이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지금 5~8년 정도 된 후배들은 영화를 통해 자신을 시프트 업(shift-up·상승)하려는 세대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물론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정서적으로 단절감이 있다"면서 "양쪽이 모두 노력해서 그 단절감을 메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차승재 신임 영화제작자 협회장 인터뷰 / 전기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