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굽이치는 바다와/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시 ‘가을의 기도’ 전문)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신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작활동을 통해 근·현대 문학사에 자취를 남긴 다형(茶兄) 김현승(金顯承·1913~1975·사진) 시인의 시비(詩碑)가 생전에 그가 살던 광주 남구 양림동 양림산 언덕에 세워졌다.

김현승시비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문병란·전 조선대교수)와 광주 남구 양림동주민자치위원회는 30일 오후2시 호남신학대 교정에서 김현승 시비 제막식을 갖는다.

이 대학 예음홀과 증축 예정인 예배실 사이, 무등산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곳에 세워진 시비는 주 조형물과 부 조형물 등 3기로 구성돼 있다. 주 조형물은 3m 높이로 펜촉과 횃불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책 모양의 부 조형물에는 대표작 '가을의 기도'가 새겨졌고, 또 하나의 조형물은 유난히도 차를 좋아했던 시인이 차를 마시는 모습과 함께 연보와 문학세계·제자 문인 명단 등이 담긴 '평설비'로 꾸며졌다.

시비의 펜촉 모양의 가운데 틈으로는 무등산 정상이 보인다. 이곳 시비에서는 시인이 살았던 집(양림동 78번지, 90번지)과 다니던 교회(양림교회), 학교 터(숭일학교·현재 무등파크), 근무했던 조선대는 물론, 그가 자주 드나들던 광주도심의 다방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시비 제작에는 광주시와 남구청 지원금 2500만원과 후원금 모금액 730만원 등 모두 3200여 만원이 들었다.

시비 제작을 주도한 송인동(영어과교수) 호남대 기획실장은 "시비가 세워진 양림산 언덕은 시인이 유년기와 청년기 때 수없이 오르내리며 시상을 떠올렸던 뜻 깊은 자리"라며 "학교 측과 지역 주민, 시와 구 등의 도움으로 시비 주변에 30여 평의 소공원을 꾸밀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평양에서 태어나 목사인 부친을 따라 광주에 정착, 유년기부터 양림동에서 살았던 김 시인은 조선대 교수로 재직하며 문병란·문순태·손광은 등 많은 작가들을 길러냈다. 문예지 '현대문학'을 통해서만 이 지역 문학도 32명을 등단시켰다. 시인 김준태씨는 그를 '광주의 예언자'로, 손광은·문병란씨는 '광주를 시인의 마을로 조성한 분'으로 회고했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광주를 고향처럼 사랑했던 시인은 광주를 '문화가 6월의 수풀처럼 무르익어가는 도시'라고 한 작품에서 묘사했었다. '김현승 시초' '옹호자의 노래' '견고한 고독' 등 시집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