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사 세고에(瀨越憲作)는 평생 3명의 제자만 길렀다. 동양 3대 천재라는 기성(棋聖) 오청원, 관서기원 총수 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郞), 조훈현이다. 세고에는 막내 조훈현을 끔찍이 아꼈다. 1972년 조훈현이 군 복무를 하러 돌아간 뒤 넉 달 만에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며 유서를 남겼다. “훈현을 다시 데려와 대성시켜라.” 조훈현도 한 명의 내제자(內弟子)만 들였다. 1984년 아홉 살배기를 집에 데려와 먹이고 재웠다. 이창호다.
▶이창호는 1990년 스승에게서 ‘최고위’ 타이틀을 따냈고 8개월 뒤 역시 스승으로부터 ‘국수’를 빼앗았다. 1993년엔 스승의 성을 허물고 12관왕이 됐다. 이창호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조훈현의 아내 글에 잘 묘사돼 있다. “제가 차를 몰아 타이틀전을 벌이는 남편과 제자를 대국장에 데려다 줬습니다. 지고 온 남편이 녹초가 돼 자는데 새벽 2시면 어김없이 창호가 있는 2층에서 바둑돌 놓는 소리가 ‘비수’처럼 들려옵니다.”
▶한국 바둑사에 숱한 기록을 세워오던 이창호의 부진이 꼬박 1년째 이어지고 있다. 세계대회에서 어이없는 실수로 잇따라 패하더니 그제는 모처럼 나선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중국 창하오(常昊)에게 2대0으로 완패했다. 이창호가 26승1무6패로 절대 우위를 보이던 창하오에게까지 맥없이 지자 팬들은 “슬럼프에 빠진 것 아니냐”며 속을 태우고 있다.
▶프로 22년차, 32세가 되도록 이창호가 겪는 승부의 사계절은 잔인하도록 변화무쌍하다. 선배들을 차례로 거꾸러뜨리던 그가 이젠 등을 돌려 후배들을 버텨내야 한다. 기풍과 약점은 낱낱이 노출된 지 오래다. 1970년대 4~5개였던 기전(棋戰)이 19개로 늘고 국제대회가 15개나 생긴 것도 진을 뺀다. 얄팍한 세태는 ‘제한시간 5분, 초읽기 30초 5회’라는 TV 초속기(超速棋)까지 강요한다. 그런 격랑 속에서도 그는 수도승 같은 미혼의 삶을 계속하며 스트레스를 묵묵히 삭혀왔다.
▶그는 말한다. “체력으론 40대까지 문제가 없다” “예전보다 많이 지지만 후배들 실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다” “딱 한 가지(신부) 빼곤 다 준비됐지만 결혼한다고 성적 좋아지나요?”…. 세월 앞에서도 ‘돌부처’라는 별명대로 여전히 무심(無心)의 경지다. 이창호의 1년 부진에 애 달아하는 것은 정작 본인보다도 팬들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