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의 전교 회장을 여학생이 도맡고 명문 사립대에서 여성 총학생회장이 나오는 것이 이제 한국에서도 더 이상 신기한 뉴스가 아니다. 80년대 한 자녀 낳기 가족계획 표어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바로 당대에 한국 사회를 바꿔놓았다. 부모로부터 전적인 지원을 받고 자란 딸들, 어느 아들 부럽잖게 당당하게 키워지며 자존감과 자신감 넘치는 여성들의 출현이다.

미국의 이름난 아동심리학자로 하버드대학 교수인 댄 킨들런은 미국 전역에서 이런 여학생들을 만났다. 공부, 운동, 친구 관계, 미래에 대한 비전, 리더십 모든 분야에서 또래 남학생과 당당하게 경쟁하고 종종 그들을 압도한다. 2004년 보스턴의 고교 졸업식에서 대표연설자의 80%가 여학생이었다.

10대 여성은 자부심이 낮고 자기 목소리를 잃는다는 전통적인 ‘사춘기 여성 심리’ 이론을 완전히 뒤엎는 이들, 미래의 지도자들을 킨들런은 ‘알파걸(alpha girl)’이라고 이름 붙였다.

“오늘날 미국 소녀들은 여성해방운동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는 첫 세대들이다. (우리가 연구한) 알파걸 집단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축은 1980년대 말에 태어난 아이들로, 바로 이때 대학에서 여학생 숫자가 남학생보다 많아지기 시작한 전환기였다.” 킨들런은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사회에서 태어난 이들은 부모가 어릴 때부터 ‘딸들의 가능성과 역할에 대한 생각’을 갖고, ‘딸들에게 뭔가 성취하고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준’ 결실이라고 말한다.

요즘 10대 여자 아이들의‘역할 모델’이 되고 있는 각 분야 여성들. 왼쪽부터 조앤 롤링, 힐러리 클린턴, 콘돌리자 라이스, 윤송이, 미셸 위.

알파걸을 만드는 큰 요소 중 하나가 부모다. 킨드런은 알파걸과 비(非) 알파걸의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 요소가 아버지와 딸의 관계라고 말한다. 알파걸 4명 중 3명이 아버지와의 관계가 아주 좋다고 했고 인정과 신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들은 딸들이 모험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수학과 과학, 컴퓨터, 목공, 스포츠 같이 전통적으로 아들들에게 전해주던 분야로 딸들을 적극 끌어들인다.

알파걸은 수십년에 걸친 여성해방운동/페미니즘의 승리를 자양분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은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평등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알파걸은 남성성에 동화된 여성이 아니다. 킨드런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관계지향이라는 여성심리학이 알파걸 연구에서 실제로 확인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똑똑한 여자 아이들이 사회 주역으로 성장하면 미국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킨드런은 “여자들이 운영하는 세상에서 남자들은 더 오래,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살 수 있다”며 “남자다워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사는 것 자체의 단순한 기쁨을 음미할 수 있는 사회를 이룩할 수도 있다”고 맺고 있다.

이 책은 특정 세대에 대한 연구서지만, 딱딱한 전문용어나 수치 대신 킨드런이 실제 만난 여학생, 부모, 학자들의 말을 더 많이 인용해서 술술 읽힌다. 알파걸이 태어난 배경이나 그들이 활약하는 현재, 이들이 살아갈 미래 사회에 대한 킨드런의 분석은 때로는 너무 단순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비슷한 변화를 목격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이같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