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문학의 화두는 ‘기억’(Erinnerung)이다. 이는 인간 내부에 저장된 과거가 ‘회고’(Gedaecht nis)를 통해서 현재에 재구성될 수 있다는 신념에 뿌리내리고 있다. 과거를 ‘일어난 사실 그대로’ 재구성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치가 바로 기억이고,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도 그야말로 기억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과거란 어차피 통제 밖에 있으며 오로지 기억을 통해 재현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히틀러의 건축가’로 알려진 알베르트 슈페어의 회고록은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회고록 출간에 앞서 그는 “경험한 대로 과거를 기술하려 노력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치제국에서 최고위직을 지냈던 군수장관 슈페어가 직접 경험한 ‘과거’는 과연 어떤 과거였을까? 그는 나치제국의 어떤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려 했을까?

슈페어의 기억의 자장은 대략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히틀러에 대한 기억이다. 1931년 겨울 그의 연설에 ‘매혹’된 슈페어가 기억하는 히틀러는 ‘위대한 지도자’의 이미지 그대로이다. 특히 그가 건축과 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깊은 관심과 식견을 가진 ‘문화 총통’의 이미지로 히틀러를 기억한다는 점은 예술가적 시선만이 담아낼 수 있는 히틀러의 초상이 아닐까. 전쟁 발발 이후, 히틀러의 카리스마가 그 빛을 잃기 시작하면서 히틀러의 아우라도 점차 퇴락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슈페어의 기억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둘째는 히틀러의 조력자들에 대한 기억이다. 히틀러가 업무마다 좋은 부관을 둔다는 인사 원칙을 지켰다는 사실에는 동의하면서도 슈페어의 측근들에 대한 평가는 별로 좋지 않다. 그들은 국민에게 요구되는 희생을 정작 자신들은 치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무분별하게 인력과 자신을 소비하는 것, 오로지 자신의 더러운 음모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 서로에게조차 비도덕적인 치부를 내보이고 있다는 것 등이 나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히틀러 측근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와 대비시키고 있는 점이 그의 기억의 지형을 드러내는 세 번째 부분이다. 그는 영국의 한 신문에 실린 기사를 굳이 소개하면서 자신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순수한 기술 관료로 거대한 배경이 없으며, 계급의식에서도 자유로운 똑똑한 젊은이.” 그러나 당연히 슈페어는 관료로서의 이미지보다는 ‘히틀러의 건축가’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더 과시적으로 드러낸다. 1934년 나치 전당대회의 전체 무대를 맡은 그는 광선을 활용해 전당대회에 초현실적인 스펙타클을 더했다고 자찬한다. “이 ‘빛의 광선’은 최초의 조명 건축인 동시에 나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건축개념이자 시간의 흐름을 극복한 유일한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영국대사 헨더슨의 칭찬도 고스란히 기억해낸다. “그 숭고하고 아름다운 빛의 효과는 마치 얼음으로 된 성전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나치제국의 이미지를 그야말로 ‘빛의 제국’으로 표상화하고자 했던 파시즘 미학의 대가가 스스로를 기억하는 자화상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적이 흥미롭다. 슈페어의 ‘기억’은 파시즘 독재체제를 ‘전체주의’라는 이론적 얼개로만 접근하려는 기존 연구에 경종을 울린다. 긴 호흡으로 그의 기억을 따라가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