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들을 위해 쓰여진 ‘성장동화’ 혹은 ‘청소년 소설’은 사실 어른들, 그러니까 부모와 교사가 더 열심히 정독해야 한다. 이 시기 아이들의 고민은 많은 부분, 어른들과의 불화, 소통 교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거장 뇌스틀링거의 ‘언니가 가출했다’는 내 앞가림이 급해 자식 사랑하는 법을 잊은 이기적인 부모들을 질타한다. ‘언니’ 일제(Ilse Janda)가 의붓아버지의 집에서 가출하는 이유는 엄마가 단지 재혼을 해서가 아니다. 말대꾸는 물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일제에게 “예절, 겸손, 순종이라고는 모르는 아이”라며 툭하면 따귀를 때리는 엄마 대신 자신을 정말 좋아해주는 사람,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을 쫓아 떠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온 딸을 ‘청소년 보호센터’로 보내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꽉 막힌 엄마. 근면과 정직을 강조하기 위해 아이들을 오히려 고통으로 몰아넣는 어른들. 작가는 일제 친할머니의 입을 빌어 말한다. “누가 거짓말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려면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해, 그리고 잘 돌봐줘야만 하지” “매 끼니를 챙겨준다고 해서 엄마가 할 일을 다 한 건 아니지요. 방이 예닐곱 개나 되더라도 집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의붓아버지가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고 그냥 있다면, 그건 친절이 아니란 말입니다.”

남상순의 소설 역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제와 에리카가 세 명의 할머니, 세 명의 할아버지, 새 아빠, 새 아빠의 전 부인이 낳은 아이들이라는 엄청난 ‘대가족’ 속에서 성장통을 앓는다면, 여고생 미용이는 엄마가 암으로 죽은 뒤 불쑥 나타난 아버지와 그보다 네 살이 많은 새 엄마, 그들 사이의 아들 준석이 앞에 내던져진다. 동갑내기 준석은 알고 보니 입양아. 준석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가족들 때문에 미용이는 아버지의 딸이 아닌, 아버지의 친척으로 살아간다. 아버지와 돈독한 유대를 과시하는 준석에게 ‘친자식은 네가 아닌 나’임을 보여주기 위해 교묘한 복수극을 벌이는 미용. 그러나 정작 백기를 들고 참회하는 쪽은 미용이다.

작가는 ‘가족이 별건가?’ 하고 묻는다. 핏줄에 의해 운명 지어진 관계만 가족은 아니라고,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로 마음 먹은 순간 누구나 다 가족이 될 수 있다고, 그렇게 믿고 노력해보자고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