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 국산 영화의 스크린 쿼터가 축소될 때 영화인들이 거리에 나와 격렬하게 항의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 영화산업 보호를 위한 그들의 진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한편으로는 은근히 염려스럽기도 했다.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할 문화의 구매를 지나치게 제도적으로 보장 받으려 드는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런데 요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니 새삼 그때의 몰이해 또는 오만이 부끄러워진다. 십 년 전만 하더라도 문학작품 베스트셀러 상위 목록은 대개가 우리 창작품으로 채워져 있었고, 외국 번역물은 두셋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근래 발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반대의 역전(逆轉)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창작문학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그야말로 가물에 콩 나듯 끼어 있는 것이 요즘 한국 문학시장의 현실이다. 우리 작가 보호를 위해 출판 쿼터 같은 것이라도 제안하고 싶을 정도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이와 같은 역전 또는 위축은 다른 예술장르에서도 널리 확인된다. 어느 시기까지는 창작희곡의 지분이 유지되던 연극계도 요즘은 번역희곡에 대부분의 무대를 내준 것 같고, 특히 뮤지컬 같은 것은 극소수 예외를 빼고는 해외에서 수입한 명품 브랜드 일색이다. 음악도 클래식 쪽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오직 두루춘풍인 것은 영화와 방송드라마 쪽 같은데, 그나마도 영화는 요즘 적잖이 시달리고 있는 듯 보인다. 외부적으로도 연전의 기세는 꺾인 것 같고, 내부적으로는 양극화에 시달린다고 한다. 곧 외국영화의 관객 점유율이 올라가고, 한국영화끼리는 극소수 대박에 대다수 쪽박이라는 자조(自嘲)가 흘러나오고 있다.
원칙으로 말하자면 국내 독자 혹은 관객을 번역물이나 외국작품에 뺏긴 책임은 신통찮은 콘텐츠를 제공한 작가나 재주 없는 연출가가 져야 할 것이다. 거기다가 이제는 문화상품도 시장원리에 내맡겨졌고,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것이 시장 원리라며 억지로 자위할 수도 없게 되었다. 세계화한 문화상품의 수입기준에는 질적인 담보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요즘 같은 문화예술의 수입초과 책임을 반드시 상품의 내용물 빈약이나 질적 저하로만 돌리고, 작가나 연출가만 나무랄 수 없는 데가 있다. 그 책임을 나누어야 할 곳으로 가장 먼저 혐의가 가는 것은 이른바 문화정책의 편중이나 사회적 지원의 중복이다. 지난 십 년 우리 사회는 지식산업이니 문화적 상품이니 하며 엄청난 재원을 쏟아 부었으나, 그 방향은 다분히 한쪽으로 치우친 감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이른바 한류(韓流)란 현상과 관계된 분야다.
영화와 방송드라마에다 공연문화까지 가세해 동남아를 휩쓴 한류의 실체를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 성격을 두고는 그것이 무슨 대단한 문화적 추세라기보다는 경제적인 규모의 효과거나 틈새시장 공략의 성공일 뿐이라고 깎아내리는 쪽도 있다. 더욱 극단적으로는 문화적 품질이 담보되지 못한 그 일시적 성공이 오히려 진지하고 수준 높은 문화의 한류를 가로막게 될 수도 있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그 한류와 연관된 분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지나친 편중이었거나 중복적이었느냐는 함부로 단언할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 10년 우리 문화의 중점이 그 방향으로 옮겨졌으며 다른 분야, 특히 깊이 있고 세련된 콘텐츠 생산을 담당하는 기초적인 문화예술 분야가 상대적으로 소외를 느껴야 했던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이든 정치로부터 연역해 해석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 또한 ‘잃어버린 세월’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