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2007년 국제 무대의 큰 축 중 하나다. 미국을 견제해서 세계 곳곳의 분쟁을 조정하려는 목소리가 EU 내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다. 프랑스 민간 싱크탱크 국제관계전략연구소(IRIS)의 파스칼 보니파스(Pascal Boniface·사진) 소장은 2007년을 “국제문제에서 다자적(多者的) 분쟁 해결 노력이 강화돼야 할 한 해”라고 규정했다. 예를 들어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처형 이후에도 미국의 중동 정책엔 마땅한 해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EU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리오넬 조스팽(Jospin) 총리의 사회당 정부에서 프랑스 국제협력최고상임위원회 고문(1999~2003년)을 지냈고, 유엔 군축문제자문위원회 상임위원(2001~2005년)을 역임한 프랑스의 대표적 국제정치학자다. 현재 프랑스 국방부에 전략문제를 자문하며, ‘제국에 맞선 프랑스’ ‘축구와 세계화’ 등 40여 권의 저서를 냈다.
―올해 가장 큰 국제적 이슈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프랑스에서 보기에는 중동문제다. 이라크문제, 레바논 상황,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란 핵 상황 등 중동문제가 지속적인 세계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담의 처형 이후 이라크 상황은.
"불행하게도 미국이 할 수 있는 어떤 이상적인 해법도 없다. 오직 나쁜 해법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을 2만~3만명 증원해도 상황이 달라질 건 없다."
―프랑스에 중동문제가 왜 그리 중요한가.
"프랑스뿐 아니라 현재 국제 질서에서 가장 큰 갈등 요인이 서구와 이슬람 세계의 관계다. 그렇다고 새뮤얼 헌팅턴(Huntington)이 제시한 '문명의 충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도 문제가 많다. '문명의 충돌'은 문명이 필연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고 충돌이 지속될 것처럼 전제하지만 역사적으로 전쟁은 같은 문명권 내에서 훨씬 더 자주 일어났다. 10년 전부터 문명 충돌이 전략적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있지만 문명 충돌은 피할 수 있으며, 피해야만 한다."
―중동문제의 핵심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다. 9·11사태 이후 미국이 범한 오류를 유럽이 저지르는 것을 피해야 한다. 9·11 테러 후 워싱턴은 군사적 우월성이 국가 안보를 보장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어야 했다. 걸프전 이후 아버지 부시(Bush) 대통령은 중동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여겼지만 그가 택한 수단은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었다. 중동에 적극 개입한다는 점에서 아들 부시 대통령도 아버지와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아들 부시는 미국이 이스라엘과 일체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의 샤론(Sharon) 총리가 자신의 전쟁에 부시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유럽이 중동문제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이라크전쟁이 시사하는 바는 실패가 예상되는 전쟁에 개입해서는 어떤 이익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분쟁을 확산시키기보다는 분쟁 해결로 더 큰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을 확대하려고 해도 유럽은 그에 휘말리지 말고 중재와 분쟁 해결에 더 주력해야 한다."
―중국이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을 견제하는 초강대국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10~20년 내로는 힘들다. 한 세대 이상이 지나야 가능할 것이다. 다만 북핵문제 등에 있어서는 북한 지도부와 소통되는 중국이 계속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프랑스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최우선 순위는 뭐니뭐니해도 유럽 정책이지만 주된 위협은 중동에서 나오며, 경제적 기회와 도전은 중국 등 아시아에서 온다."
―유럽 통합의 시초가 되는 로마조약이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국제 질서에서 유럽의 역할을 어떻게 보는가.
"국제 무대에서 EU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다. 현재 EU는 공동의 전략적 안보정책 분야에서만 (협력이) 부족할 뿐 계속 발전하고 있다. 국제 질서는 미국·중국·EU의 3자구도로 나아가고 있다. 회원국들이 친미·반미로 나눠져 있지만 미국에 대해 독자적 목소리를 내는 유럽 국가가 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독일은 미국에 반대할 힘이 없었다. 지금은 독자적 목소리를 낸다. 가장 친미적인 토니 블레어(Blair) 총리조차 영국 내에서 '너무 미국과 가깝다'고 비난 받지 않나."
―올봄 프랑스 대선에서 여당의 니콜라 사르코지(Sarkozy) 후보와 야당의 세골렌 루아얄(Royal) 후보 중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프랑스 외교정책의 색깔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는가.
"물론 지도자 개인 성향에 따라 외교정책도 수정된다. 하지만 친미적 성향의 사르코지 내무장관이 당선된다 해도 프랑스 외교정책과 노선에 급격한 변화와 단절이 오기는 힘들다."
―외교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뜻인가.
"물론이다. 한 나라의 국가 이익을 결정하는 것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요인들이다. 지도자 개인의 성향이나 색깔이 외교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한국에선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한데….
"물론 북핵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외교정책과 국내 정책을 구분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통일이 한국의 최대 목표라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한반도 통일은 점진적이고 장기적 과제가 돼야 한다. 북한에 대한 채찍정책만으로는 불충분하고 경제 교류 등을 통한 지속적인 신뢰 구축 과정이 필요하다. 독일 통일 사례를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