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노거수(老巨樹·크고 오래된 나무)는 개발에 갇혀 답답하고, 산골 당산나무(수호신처럼 마을을 지키는 나무)는 사람들이 떠나 쓸쓸합니다.” 전북 임실군 신덕면 지장리 옛 오궁초등학교에 작업실을 둔 사진작가 이철수(李鐵洙·57)씨의 카메라는 늘 오래된 나무들만을 향한다. 벌써 5년째 그는 전라도의 큰 나무들만을 고집스럽게 촬영하며 떠돌고 있다. 지금까지 광주, 전남·북 40개 시·군·구 보호수를 포함, 수령 수백 년의 나무 2332그루를 흑백 필름 4만6500컷에 담았다.

그가 오래된 나무들만을 촬영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5월. 그는 “한때 아름다웠으나 이제 잊히고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해 후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촬영을 시작했다고 했다.

“동네의 안녕을 빌던 당산제(堂山祭)를 지내던 당산나무들은 우리 옛 마을마다 하나씩 버티고 있으면서 어른처럼 혹은 친구처럼 마을 사람들 행복과 불행을 감싸 안았어요. 지금은 몇몇 마을 외엔 더 이상 당산제 같은 민속행사가 이어지지도 않고 있고, 나무들 나이도 수백 년이 되어 서서히 죽어 없어질 겁니다. 한국인 가슴에 새겨진 가장 평화적인 고향마을 모습이라 할 만한 ‘나무가 있는 풍경’들을 영원히 붙잡아 우리 자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죠.”

이씨는 늦깎이 사진작가다. 젊은 날엔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했으나 83년 ‘전남 나로도 아이들 모습’을 촬영한 작품이 사진 공모전에 입상하는 바람에 인생이 바뀌었다. 뒤늦게 불붙은 사진 열병에 이씨는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카메라를 잡았다. 내친김에 중년의 나이로 93년 서울예전에 들어가 사진을 정식으로 공부했다.

사진을 시작할 때부터 그는 사라져가는 풍경에 앵글을 맞췄다. 95년 말부터 2001년 10월까지 그는 전북 진안군 용담댐 건설에 따른 주민 3000가구 이주 및 수몰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 2002년 말 사진자료집을 펴내기도 했다.

고목이 있는 마을과 산골짜기에 도착하면 그는 먼저 나무에 간단하게 예를 표한다. 가까이 나무의 밑동과 줄기·가지를 찍고, 멀리서 나무가 맞는 여명과 석양을 앵글에도 담는다. 그는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나무에 다가설 때마다 그들의 영혼을 느끼고, 때로는 숨결과 말소리까지 듣는다”고 말했다. 진기한 나무들도 여럿 사진에 담았다. 수령 200년을 넘는 여수 사도의 소나무 다섯 그루는 형제처럼 나란히 한 바위 위에 서서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그는 지난 3년8개월 동안 병들어 말라 죽고 비바람에 큰 줄기가 꺾인 노거수를 100그루 넘게 목격했다. 그는 “지금도 논가의 당산나무는 땅에 스며든 제초제로, 도시 노거수들은 뿌리 위를 덮은 콘크리트로 기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탄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