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표적 외국인 특구 이태원. 화려한 상점들이 늘어선 대로변과 달리 유흥업소로 가득찬 ‘뒷골목’은 발걸음 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 이 동네가 요즘 들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변화의 주역은 술 마시지 않는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이다.

지난 5일 밤 9시 이태원역에서 이슬람성원(모스크)까지 이어지는 200여m 길. 그 복판 한식당이 있던 자리에 지난 6월 다국적 수퍼마켓 ‘마르하바 마트’가 문을 열고 성업 중이다. 30평 넘는 널찍한 매장에 향신료들이 수북하고, 대형 냉장고 유리 안에는 수입 소·닭·양 등의 할랄(몸에 흐르는 피를 모두 빼내는 이슬람식 도살법) 고기가 말끔히 포장돼 있다. 콜라·사이다 옆에는 방글라데시산(産) 망고쥬스도 나란히 자리잡았다.

양고기와 향신료 등 이슬람 교인들을 위한 음식재료를 파는 이태원의 한 수퍼마켓.대표적인 유흥가였던 이태원 뒷골목이‘이슬람거리’로 탈바꿈하고 있다

‘마르하바 마트’에서 10m쯤 떨어진 곳에는 코란과 하디스 등 이슬람 경전을 판매할 서점이 오는 4월쯤 문 연다. 건너편 옛 미용실 자리에 1년 전 문 연 파키스탄 할랄음식 전문점 ‘스와트 레스토랑’이 불을 환히 밝히고 있다. 주인 칸(42)씨는 “한국 카레 전문점 보다 더 맛있는데도 가격은 절반이 안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미식가들이 꽤 온다”고 자랑했다.

이렇게 이태원 뒷골목에 둥지를 튼 이슬람 식당·수퍼는 모두 10여곳. 대부분 지난 3~4년 동안 이곳에 들어왔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무슬림들이 분주히 식료품을 나르고 열띤 토론을 나누는 모습은 익숙한 동네 풍경이 됐다.

이 동네에 모스크가 들어선지 31년이 지났지만, ‘이슬람 타운화’는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9·11테러와 이라크 파병 등으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시기와 대체로 일치한다.

지역 부동산 시장도 이들이 ‘접수’했다. 야쿠르트 아줌마 전세옥(53)씨는 “전·월세 수요는 그 사람들(무슬림)이 가져가 집주인들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다. 쓰레기 무단투기 경고문을 아랍어와 병기해야 할 정도다.

이런 변화를 가장 반기는 이들은 바로 한국인 무슬림들. ‘타락한 거리’를 정화(淨化)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슬람교 중앙회 이주화 선교국장은 “이곳 가게들은 대부분 예전 술집 아니면 무대 옷을 다루는 의상실·미용실이었다”며 “요즘엔 보광초등학교 학습환경이 좋아졌다고 학부모들이 반긴다”고 전했다. 주민들도 이런 변화를 환영한다. 수퍼 주인 양동엽(60)씨는 “그 사람들 몰려다니긴 하지만 술을 안 먹어서 그런지 싸우거나 하는 일은 없다”고 칭찬했다. 용산경찰서 이태원지구대 윤을상 경사도 “유흥 가게들 자리가 이슬람 가게들로 바뀌며 요 몇 년 새 확실히 사건사고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처남과 파키스탄 음식점 ‘타박할랄’을 운영하는 알판(29)씨는 “한국인·외국인 할 것 없이 남녀노소가 즐겨 찾는 다국적 문화의 거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