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은 돈의 값이라는 점에서 한 나라 경제의 종합 성적표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으스대야 마땅할 것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원화의 가치가 달러 대비 무려 9% 가까이 뛰었기 때문이다. 위안화 가치는 3% 오르는 데 그치고, 엔화 가치는 오히려 1% 가까이 떨어지는 동안 이룩한 ‘쾌거’이다. 덕분에 달러로 표시되는 1인당 국민소득도 2만 달러를 눈 앞에 두게 됐다. 외환 위기 때 원화가 휴지 조각 취급 받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축포를 터뜨릴 일 아닌가? 그런데 경제 전문가들은 소리 높여 ‘환율 위기’를 경고하고, 기업인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친다. 왜인가?
한 민간 경제연구소 C상무는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성장률은 곤두박질치죠, 경상수지는 10년 만에 적자로 돌아선다는 전망이 나오죠.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만 보면 도대체 원화 값이 오를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도 계속 오르니 부작용이 생기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피해를 우리 경제의 마지막 버팀목인 수출 기업이 고스란히 뒤집어 쓰고 있다는 것이다. 굴착기(건설 중장비의 일종) 제조용 부품업체인 S사 C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연간 매출 200억원 중 절반 이상을 일본에 수출하는데, 일본 업체에 비해 20~30% 정도 싼 가격 경쟁력이 주무기였다. 그런데 급격한 원화 가치 상승 때문에 지금은 같은 값에 물건을 팔아도 엔화로 환산하면 오히려 일본 업체보다도 비싸게 돼버렸다.
거래를 끊으려는 바이어를 설득하러 얼마 전 일본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바이어는 두말하지 않고 중국과 일본 경쟁 업체의 가격표를 보여 준다. 너 같으면 어느 물건 사겠느냐는 것이다. 돌아서는 C사장에게 바이어가 딱하다는 듯이 한마디 던졌다.
“당신 나라 미친 것 아니냐? (환율 때문에) 기업이 이렇게 죽어가도록 (국가는) 보고만 있느냐?”
하긴 환율 유지에 민관(民官)이 똘똘 뭉치는 일본 풍토에서 보면 손 놓고 있는 한국의 외환당국은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다. 기업은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당국자가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외환시장에 관한 한 한국은 일본의 치밀함을 배워야 한다. 일본은 1985년 프라자합의 이후 급격한 엔고(高)로 10년을 고생하면서 환율이 잘못 되면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다. 그 뒤로 기업도 정부도 알아서 대비하고 조심한다.
지난해 원화 가치가 급등하는 동안, 엔화 가치는 오히려 떨어진 것을 일본의 치밀한 경제 외교의 승리로 보는 견해도 있다. 여느 때보다 미일(美日) 관계가 탄탄해지면서 미국이 엔화 환율에 대해서는 유독 관대해졌다는 것이다. 물론 외환당국이 시장에 개입해 환율의 방향을 인위적으로 바꾸기도 어려운 세상이고, 그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환율의 급격한 하락이나 상승을 막고,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은 외환당국의 당연한 의무이다.
그런데도 우리 외환시장은 오늘도 롤러코스터를 타고, 정부의 의지와 역량에 대한 불신이 먹구름처럼 두텁다. 뒤늦게 노무현 대통령이 환율 문제를 수차 거론하면서 대책이 강구되고 있다지만, 먼저 시장에서 불신을 걷어 내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를 위해 당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교훈을 되새기며 뼈를 깎는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