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소원은 누구나 복(福)은 부르고 화(禍)를 막는 것인데, 이를 이루기 위한 좋은 방법이 정초(正初) 덕담(德談)을 나누는 것이다. ‘구당서’(舊唐書) ‘신라조’에는 ‘신라에서는 새해 첫날(元日)을 중요하게 여겨서 서로 축하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우리 민족의 새해 덕담의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말해준다.
덕담의 출발은 임금과 백관이 새해 첫날 서로 하례하는 궁중의 하정례(賀正禮)다. 시로 기리는 궁중의 덕담이 연상시(延祥詩)다. 신년시(新年詩)라고도 하는데, 홍문관·예문관 제학(提學)이 미리 준 운자(韻字)에 임금 측근의 시종신(侍從臣)이 시를 지으면, 잘된 것을 골라 대궐 기둥이나 문설주에 써 붙인다. 이 풍습이 민간으로 퍼진 것이 입춘에 ‘국태민안(國泰民安)’ 등의 글귀를 써 붙이는 입춘문(立春文)이다. 바깥출입이 어려웠던 반가(班家)여인들의 덕담이 낳은 산물이 문안비(問安婢)다. 여종을 대신 보내 친지들에게 새해 덕담을 전하는데, 이 여종이 문안비이다.
그림으로 기리는 덕담이 세화(歲畵)이다. 도화서(圖畵署) 에서 임금에게 수명을 맡은 수성선녀상(壽星仙女像)이나 그날을 맡은 직일신장상(直日神將像)을 그려서 헌상하고 각 관아에도 나누어 주거나 선물로 돌렸다. 민간에서도 궁중의 이런 풍습을 본떠서 닭과 호랑이를 그려서 붙였는데, 이것이 문에서 재액을 물리친다는 뜻의 문배(門排)이다.
중국에서는 아직도 당 태종 때의 무장 울지공(尉遲恭)·진숙보(秦叔寶)나 문신 위정공(魏鄭公)의 초상을 대문에 붙여 놓는다. 당 태종이 최고의 황제라는 인식의 반영인데, 고구려가 오래 갔다면 태종을 꺾은 연개소문이 우리의 문배에 사용되었을지 모른다. 우리 선조들이 실제 사용한 문배는 처용상(處容像)이다. 신라 헌강왕(憲康王) 때 처용은 역신(疫神)과 미인 아내의 통정 현장을 목격하고도 도리어 춤추며 노래함으로써 역신이 ‘앞으로는 공의 그림만 보아도 피하겠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덕담과 세화는 모두 궁중에서 시작해 민간으로 확산되었다. 새해에는 청와대발 덕담이 온 나라에 가득 차는 것으로 조상 전래의 좋은 전통을 되살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