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얘기가 나온다. 시베리아 농부들이 걸린다는 병이다. 농부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매일매일 보며 들에서 일하다 어느날 속에서 무언가 뚝하고 끊어져 버린다. 농부는 괭이를 내던지고 하염없이 서쪽으로 걸어간다. 걷다 멈추는 순간 그대로 쓰러져 죽는다. 농부가 견뎌내지 못한 것은 지겹게 되풀이되는 일상이었을까. 일상에 큰 획을 그어 주는 새해가 없다면 이 죽음의 병은 시베리아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해가 솟아도 새해는 새롭다. 새로 꿈꿀 수 있다는 건 새해가 주는 선물이다.

▶프랑스 낭트 사람들이 늙는 게 진절머리 난다며 새해를 반대하는 시위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난 97세 유대인 피아니스트 앨리스 조머는 나이 들수록 조금씩 더 행복해지더라고 했다. “삶과 세상을 다른 태도로 보게 되고 삶을 더 즐기게 된다. 따뜻한 방과 음악, 책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침대에 누워 창 밖 나무만 봐도, 아침에 새소리만 들어도 행복하다. 나는 아름다운 곳만 본다. 사람도 좋은 점만 본다.” 이런 새해라면 또 한 살 나이 먹는 것도 허망하지 않다.

▶올 한 해가 또다시 탈진과 후회로 끝날지라도 가족과 함께 가면 두렵지 않다. 1973년 영국 서머랜드호텔에 불이 나 51명이 죽고 400여명이 다쳤다. 3000여 투숙객 중에 가장 무사한 그룹은 가족끼리 온 사람들이었다. 불이 나자 가족의 67%가 함께 움직였지만 친구들은 75%가 각자 행동했다. 떨어져 있던 가족들도 아수라장에서 서로를 찾아 무사히 빠져나왔다. 흩어졌던 친구들이 서로 찾아 헤맨 경우는 한 팀도 없었다. 가족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다.

▶시인 정호승은 “오늘이 지나면 다시 못 볼 사람처럼 가족을 대하라”고 했다. “누구나 가족이 미울 때가 있다. 원수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러나 가족은 언제까지나 미움과 원수의 대상일 수 없다. 아침에 현관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서로 영원히 못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족은 그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행복은 다른 집 마당에서 찾지 말라고 했다.

▶행복은 어쩌다 있을까 말까 한 큰 행운에서 오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일어나는 작은 일에서 쌓인다. ‘복은 보잘것없는 데서 난다(福生於微)’고 했다. 눈앞의 일에 만족하면 그 자리가 선경(仙境)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김종길). 어둡고 찌든 한 해 불살라버리고 새 해가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