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부산 동구 자성대 부두. 60m 높이의 거대한 컨테이너 크레인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컨테이너들을 배에서 내리고 실었다. 부두 안엔 울긋불긋 컨테이너들이 가득 쌓였고, 야드 트랙터들이 개미 모양 열심히 짐을 나르고 있었다. 이 부두는 연말 몰리는 물량을 소화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부산항이지만 올해 그다지 짭잘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도리어 앞길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는 걱정들이 쏟아지고 있다.
“세계 5위의 컨테이너 처리 항만인 부산항이 물동량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해마다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 오던 부산항 물동량 증가세가 지난 5~10월 연속 6개월간 환적(換積)화물 마이너스 성장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위기의 부산항=올해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율 예상치는 1% 대다. 이는 최근 20~30년 사이 최저 증가율.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율은 2002년 17.1%를 정점으로 2003년 10.09%, 2004년 10.42%로 두자릿수 성장세를 이어오다 지난 해에는 3.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다가 올해는 더욱 곤두박질친 것이다.
부산항 물동량 성장의 견인차였던 환적화물 역시 제자리 걸음 수준이었다. 지난 해 517만개를 처리했으나 올해는 524만개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또 지난 1월 19일 3개 선석(船席)에 연간 90만개 처리능력을 갖추고 문을 연 신항도 11월 말까지 모두 20만개 정도를 소화하는 데 그쳤다. 올해 목표치가 80만개에 4분의1에 그치는 한심한 수준이다.
부산항이 전국 항만 컨테이너 화물처리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99년 85.4%에서 요즘은 78%쯤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30년 이상 국내 수출입물량 처리에 있어 독보적 1위였던 부산항은 2004년 인천공항에 그 자리를 내줬다. 이 때문에 ‘동북아 물류 허브’를 꿈꾸는 부산항의 미래가 어둡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들이 많아지고 있다.
◆저성장의 원인과 문제=전문가들은 국내 수출입 물량의 성격 변화, 항만 수출입 화물의 분산, 중국 상하이 양산항 등 외국 경쟁 항만의 비약적인 성장 등을 부산항 성장률 둔화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먼저, 국내 산업이 중후장대(重厚長大)형에서 경박단소(輕薄短小)형으로 재편되면서 수출입 화물의 성격 또한 선박 수송에서 항공 수송으로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 수도권의 항만 수출입 화물이 인천, 평택 등 새로 개발된 항만으로 분산되고 있다는 것도 물동량 저성장의 한 원인이다. 중국과 교역이 늘어나면서 중국에 가까운 인천, 평택항을 이용하는 수도권 수출입 화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상하이, 선전 등 경쟁항만의 눈부신 성장은 한때 30%씩 증가하던 부산항의 환적화물량의 기세를 꺾어버렸다.
장래 부산항의 주축이 될 신항의 부진도 주요 원인중 하나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신항을 운영하는 부산신항만주식회사와 대주주인 아랍에미리트 DPW측의 마케팅력 부족 책임이다. 하지만 배후도로 등 기반시설 미비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항구에 내린 화물을 빨리 수송할 수 있는 지원체제가 안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감천항 쪽에서 냉동화물이 들어오는 견마교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고, 2008년 개통 예정이던 배후철도는 2010년으로 연기된 상태다.
◆위기의 극복=전문가들은 우선 "부산항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부경대 하명신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국내 산업 구조 변화 등으로 부산항 역시 고속성장형에서 안정성장형으로 바뀌었다”며 “따라서 종전과 같이 화물의존형 저부가가치 항만이 아닌 화물창출형 고부가가치 항만으로 질적 성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일본의 가구 물류기업을 부산신항 배후 부지에 유치,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반제품을 부산항으로 들여와 조립, 가공, 포장한 뒤 일본에 수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국해양대 물류시스템 공학과 남기찬 교수는 “신항을 경제자유구역과 연계시켜 항만과 제조업을 풀 패키지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등의 전략적 드라이브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즉 신항 배후부지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삼고, 그 안에 다국적 제조업을 유치하면서 배후도로 등 지원체계를 동시에 적기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부산항은 나름대로 이런 방향으로 준비를 하고 있긴 하다. 부산항만공사는 신항 배후부지 30만평을 국내외 70여개 물류 기업으로 이뤄진 20여개 컨소시엄에 분양을 했다. 내년 하반기면 7~8개 컨소시엄이, 2009년 하반기엔 나머지 컨소시엄들이 공장을 세우고 본격 영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 내년 신항 추가 3개 선석이 운영에 들어가면 부산항 전체 능력이 크게 늘어 북항, 감천항, 신항 등의 화물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서비스도 더 좋아질 것으로 부산항만공사는 기대하고 있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개당 2만원의 컨테이너세 폐지도 부산항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부산항만공사 강부원 마케팅팀장은 “물류부지가 가동되면 부산항은 화물창출형 항만으로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며 “이런 변화 등에 힘입어 부산항은 유럽의 로테르담, 아시아의 싱가포르 같은 항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