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반달가슴곰(1급 멸종 위기종·천연기념물 329호) 복원사업이 위태롭다. 멸종 위기종 복원을 위한 국내 첫 프로젝트로 2002년 이후 지금까지 방사된 곰은 모두 24마리.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08년까지 12마리를 더 풀어 ‘자연 번식 등으로 2015년쯤이면 최소 생존 개체군인 50마리를 넘어 지리산에 야생 곰이 복원될 것’이란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과연 그럴까? 현재로선 장밋빛 기대일 뿐이다. 복원은커녕 “사람도 잡고, 곰도 잡을 판”이란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등산객과 지리산 자락의 주민들은 이미 100㎏ 가량 크기로 훌쩍 자라버린 곰들의 위협에 노출돼 있지만 대책은 따라주지 않는다.

▲‘천왕’은 지리산 곰 가운데 가장 위험한 녀석이다. 사람들이 오가는 등산로 근처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대로면 곰도, 사람도 잡게 될 것”

2004년 방사된 수컷 ‘천왕’은 다음달 세 돌을 맞는다. 곰의 수명은 20여년. 사람 나이로 치면 열 살을 조금 넘긴 셈이다. 하지만 천왕의 이빨은 형편없다. 조사 결과 “42개 가운데 19개가 심하게 썩었다. 통증이 심할 것”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등산객이 던져주는 과자나 대피소와 산속 공사장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살아 온 탓이다. 이탓에 “(곰이 아니라) 음식을 구걸하는 강아지가 됐다”는 혹평도 나왔다. 게다가 등산객 배낭을 찢어 음식물을 빼앗고, 산사태 보수공사 인부들의 컨테이너 숙소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며 ‘위협’을 주기도 했다.

지난 10월에는 중봉 근처 탐방로를 걷던 한 여성이 변을 당할 뻔했다. 인기척이 들려 돌아보니 곰이 바짝 쫓아왔던 것.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는데, 곰이 발목을 물었다. 공단 홈페이지나 등산동호회 사이트엔 이런 이야기가 그득하다. “뒤에서 몸을 감싸인 등산객이 왼쪽 팔뚝을 긁혀 병원으로 갔다” “계곡을 걷다가 뒤돌아보니 곰이 머리를 흔들면서 내려다보고 있더라. 죽기 살기로 구르듯이 산을 내려왔다”….

▲지난 8월엔 지리산 중봉 인근에 놓인 산사태 보수공사 근로자용 컨테이너 문이 안에서 잠겨 있는 걸 확인한 뒤 쇠창살 사이로 몸을 집어 넣어(윗쪽 사진) 기어코 방안에 잠입(아래쪽 사진)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덕성16호’는 올 한해 국립공원 경계를 넘나들며 벌통을 털었다. 피해액은 자그마치 4000여만원. 붙잡았다가 다시 풀어줬더니 이번엔 한 농가의 염소 우리와 닭장을 박살내버렸다. ‘덕성16호’와 같은 곰 때문에 올 한해 모두 2억여원의 벌통 피해가 발생했다. 작년의 5배 수준이다. 공단 관계자는 “몇 년 전 염소 세 마리를 죽인 ‘반돌’이 경우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방사곰 24마리 중 14마리 적응 실패

복원사업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는 지적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방사 곰 24마리 가운데 5마리가 밀렵꾼 등의 올무에 걸려 숨졌고, 탐방객을 졸졸 따라다녀 ‘야생 적응 실패’로 판정돼 회수한 곰도 7마리다. 얼마 전 자연적응훈련장에 갇혀 있다 탈출한 ‘천왕’을 합하면 모두 14마리에 문제가 발생한 셈이다.

사실 실패의 징후는 이전부터 있었다. 몇 개월째 말썽을 부려 온 천왕이에 대해 “안전사고 위험이 크니 하루 빨리 회수해야 한다”는 현장 관리팀의 보고가 상부에 몇 번 올라갔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상식 밖. “등산객이 지리산 정상 부근에서 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 기념도 되고 낭만적일 수 있으니 포획하지 말라. 다만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곰의) 일일 동향을 보고하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공단 관계자는 “현장 인력이나 등산객 안전을 뒷전에 둔 처사”라며 “문제되는 곰은 그때그때 회수해야 하는데 복원사업은 실패작이라는 비판이 쏟아질까봐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이상팔 자연자원과장은 “야생동물 복원의 노하우가 없는 상태에서 멸종 위기종 1호 사업으로 대형 맹수를 선정한 방법론상의 문제가 있다. 개선책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지리산 곰들은 6마리가 동면에 들어갔다. 수백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복원사업의 성공 여부는 내년에 판가름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