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동인문학상 최종후보에 오른 김인숙의 소설 ‘그 여자의 자서전’은 정계에 나가고 싶어하는 졸부(猝富)의 자서전을 대신 써 주는 젊은 여자 소설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일을 맡은 주인공은 의뢰인을 미화하는 일에 모멸감을 느낀다. “작가들이란 게 없는 말도 잘 불려서 하더구만, 있던 일에 살도 못 붙인단 말요?”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의뢰인은 작가를 타박한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1500쪽에 이르는 대표작 ‘몽테 크리스토 백작’을 1년도 안 돼 완성했다. 또 다른 성공작 ‘삼총사’도 비슷한 시기에 출간했다. 더구나 두 작품은 파리의 두 신문에 동시에 연재된 것이었다. 비결은 ‘소설 공장’에 있었다. 많을 땐 70명까지 일했던 그의 작업실은 매년 20~30편의 소설을 쏟아냈다. 뒤마가 줄거리와 인물 성격을 설정하면 고용 작가들이 세밀한 부분을 써 내려갔다.
▶화가이자 방송인인 한젬마씨의 베스트셀러들이 ‘대필(代筆)’ 의혹에 휩싸였다. 그가 쓴 초고를 구성작가가 대부분 다시 썼다는 것이다. 한씨와 출판사는 “저자가 기획하고 취재하고 직접 쓴 원고를 구성작가와 편집자가 윤문(潤文)했을 뿐”이라고 했다. 올해 최고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를 번역한 사람이 아나운서 정지영씨가 아니라 따로 있다는 ‘대역(代譯)’ 파동이 독자를 실망시킨 게 바로 얼마 전 일이다.
▶대필이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정치인·기업인의 자서전과 어려운 전문서적의 경우 글을 쉽고 명료하게 쓰는 작가나 저술가의 도움을 받는 게 나을 수 있다. 서구에선 자서전이나 연설문을 대신 써 주는 ‘Ghost Writer’(유령작가)가 어엿한 직업이다. 우리 재벌총수들의 저서와 자서전을 유명 소설가나 방송작가가 썼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인터넷에는 자서전, 기업 사사(社史), 가족사들을 대필해 주는 사이트도 여럿 있다.
▶그렇다고 글로 먹고사는 저술가나 베스트셀러 저자까지 대필 시비에 올라서는 곤란하다. 독자들이 사랑한 문체와 호흡이 딴 사람 것이라면 속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최근 일고 있는 대역·대필 논란은 책을 만드는 데 있어 점점 저자보다 출판사의 기획이 앞서는 탓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이 어쩔 수 없다면 원(原)저자와 도와준 사람을 나란히 공(共)저자로 올리는 서구처럼 우리도 저술에 참여한 사람과 과정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