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점이 대폭발하여 우주를 만들었다. 150억 년 전에 일어난 우주의 생성을 설명하는 빅뱅 이론이다. 점 하나에서 우주가 생겨났다니? 웬만한 상상력으로는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우주의 비밀, 바로 천지 창조의 순간이다. 세계적인 작가 피터 레이놀즈(Peter Raynolds)가 직접 그리고 쓴 ‘점’(김지효 옮김, 문학동네)은 빅뱅 이론처럼 간명하면서도 심오한 그림책이다. 예술의 창조와 작가의 생성, 인간적인 삶의 탄생은 과연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가르쳐주는 훌륭한 길라잡이인 것이다. 여기에 단순한 선 처리와 화려하지 않은 색깔 몇 개로 그려낸 사랑스러운 그림들, 시처럼 극도로 정제된 언어 표현들까지 절묘하게 아우르며 훌륭한 그림책, 나아가 좋은 책이란 무엇인지 잘 가르쳐 주는 책이다. 더구나 불과 30쪽도 안 되는 짧은 분량이라 아무리 독서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부담 없이 읽으며 생각하는 즐거움에 푹 빠질 수 있다. ‘
자, 이제 여기 네 이름을 쓰렴’
베티는 미술 시간에 아무 것도 그리지 못하고 낙담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베티의 빈 도화지를 보고 말씀하신다. ‘우와! 눈보라 속에 있는 북극곰을 그렸네.’ 선생님은 무엇이든 그려보라며 격려하시지만 베티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선생님은 오히려 화만 더 내는 베티에게 무엇이든 그려보라고 다시 격려한다. 무엇이든지 하라고? 도대체 무엇을 하란 말이야?! 베티는 홧김에 벌컥 연필을 종이 위에 내려찍는다. 선생님은 ‘점’이 찍힌 도화지를 보시며 여전히 자애롭게 말씀하신다. ‘자, 이제 여기 네 이름을 쓰렴.’
일주일 뒤 베티의 ‘점 그림’은 금테 액자에 담겨 선생님의 책상 뒤 벽에 걸린다. 이를 본 베티는 그보다는 더 잘 그릴 수 있다며 열심히 점을 그리기 시작한다. 색깔을 다양하게 칠해보고 크기도 계속 바꿔 보다가 마침내 바깥을 채우되 안에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아도 점을 그릴 수 있는 경지까지 성장하고 발전한다. 베티의 점 그림 전시회가 학교에서 열리고, 쭈뼛거리면서 다가오는 꼬마 소년 하나. 자신도 그림을 잘 그리고 싶지만 선 하나도 정확히 못 그린다며 자신 없어 한다. 베티는 소년에게 말한다. “너도 잘 할 수 있어.” 소년이 비뚤비뚤하게 선을 그린 도화지를 내밀자, 베티는 말한다. “자, 이제 여기 네 이름을 쓰렴.”
‘미술시간’을 ‘글쓰기 시간’으로 바꿔 읽어보자
텍스트만이야 불과 원고지 서너 장 정도지만 찬찬히 읽으면 곱씹어 보아야 할 생각거리들이 무수히 나온다. 우선,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던 소녀가 빼어난 예술가로 성장하고 후배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다는 줄거리만 해도 감동적이다. 베티의 선생님은 베티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변함없이 격려하고 칭찬하며 기다려 준다. 덕분에 베티는 자신의 잠재력을 한껏 키우면서 진정한 예술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
진정한 예술이란 스스로 즐겁게 시도하며 열정적으로 몰두하며 창조적으로 거듭 날 때 이루어지는 미적인 체험이자 성과이다. 이 과정에서 베티는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그림을 그리는 데 몰두하는 즐거움이 얼마나 근사한지, 자신의 그림을 보면서 예술적 공감을 만끽하는 다른 이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확인하게 된다.
예술과 존재, 인생이란 결국 하나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숨어 있는 것이다. 끝으로 쉽고 알차게 활용할 수 있는 독서 방법 하나. 무엇이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나 대상으로 바꿔 읽어 보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무엇이든 읽다 보면 평소 생각하기 어려운 아이디어, 깊이 있는 사고를 떠올리는 데 제격이다.
우선 ‘미술 시간’을 슬쩍 ‘글쓰기 시간’으로 바꿔 읽어보자. ‘도화지’ 역시 ‘원고지’로 바꾸고. 원고지 앞에서 머리를 쥐어 뜯으며 절망하던 적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지?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발견하려면? 피터 레이놀즈의 ‘점’은 여러분의 가슴과 머리에서 무한하게 폭발하며 우주를 창조할 아주 신기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