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간다. 일년이 한 오백일쯤 ‘패밀리’ 사이즈로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한 해가 가고 오는 게 좀 귀찮을 뿐이다. 설령 ‘365일로 구성되는 일년’이란 단위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한 해가 가고, 또 오는 걸 느낄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상황들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지난 한 해 베풀어주신 성원에 감사드리오며…’ 뚱뚱한 학이 날아가는 그림에 250번쯤 본 듯한 궁서체 인쇄문구의 송년 카드의 숫자가 늘어나고, 대신 조금은 유치하지만 귀여운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싶은 사람의 숫자는 거의 없다는 걸 깨달을 때. 입은 웃고 눈은 딴 데 보면서 ‘언제 한잔 하시죠’ ‘밥 한번 먹읍시다’라고 인사치레를 한 사람이 올해도 한 스무 명은 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넌 참 좋은 사람이야. 우리 헤어지더라도 친구로 남자’는 드라마 속 대사를 5번도 넘게 따라 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가족에게는 단 3분의 인내심도 어려운데, 직장 상사 넋두리에 “그럼요, 저도 이해해요” 라고 맞장구를 쳤던 게 몇번이었는지 알아차렸을 때.
나이 든 사람들은 입 발린 소리나 공치사로 가득한 사회생활에, 그리고 사회생활에 몰두하다가 정작 가족에게는 한없이 까칠해지는 자신에게 실망한다. 좀더 어린 친구들은 상처 줄 건 다 주고 ‘쿨’한 척 하는 애인이나 친구 때문에 가슴 아파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상황이 되면 우리 삶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지난 한 해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지만 그냥 남들도 보내니까 우리도 보냅니다.”(업무용 카드) “난 당신이랑 밥 먹을 생각 전혀 없거든. 그렇다고 나를 해코지할 생각은 말아줘.”(친하기도 싫지만 척지면 손해인 사람에게) “너, 나한테 실수로라도 문자 보내면 죽는다.”(애인과 헤어지며) “웃기시네. 그 따위 생각을 하니까 당신이 물먹는 거야.”(징징거리는 상사에게) 물론, 다음 상황은 책임지지 못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올해 내가 누구에게 두들겨 맞거나, 잊지 못할 저주의 말을 듣지 않고 넘어간 것은 그나마 최소한의 가식의 힘이었고, 하고 싶은 말을 적당히 참았기 때문이며, 필요할 때는 굴욕을 감수한 인내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간다고 성숙해지길 바라지는 말자. 대신 올 한 해도 내키는 대로 다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속물적이었으며, 때가 되면 적당히 반성한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면 어떨까. “그런 대로 잘하고 있어. 내년이라고 나아지지는 않아도 더 나빠지진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