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의 무덤 앞에서 70대 전후의 노병(老兵)들이 모여 이승복 추모제를 올렸다. 이승복군이 사망한 지 꼭 38년 되는 날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1968년으로 되돌아 가자. 그해 1월 북한 공산집단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할 목적으로 김신조 등 대규모 무장특수부대 요원을 보내 청와대를 기습하려 했다. 그후에도 북한 공산집단은 무장공비를 줄기차게 침투시켰다.
급기야 1968년 12월 9일 강원도 산골 마을에서 이승복 어린이(당시 9살) 일가족 4명이 북한 무장공비에 의해 무참히 난자당해 살해되는 전대미문의 무장 테러가 발생했다. 온 국민이 분노했고,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승복 어린이의 절규는 온 국민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그후 이승복은 북한 공산집단의 잔혹상을 고발하는 상징으로, 그 굳건한 기상으로 교육현장에 자리잡아 왔다. 이것이 사건의 전말이며 역사적 진실이다.
그후 30년. 김대중 정부 첫 해인 1998년 일부 세력들은 “이승복사건은 오도된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해 조작된 신화이며, 조선일보가 앞장서 이 신화를 조작했다”는 주장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조선일보의 1968년 12월 11일자 사회면 “공산당이 싫어요…어린 항거 입 찢어”라는 기사는 1998년 8~9월 서울시청 지하 보도와 부산역 광장에서 대형 패널에 내걸려 지나가는 뭇 행인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라는 단체는 속칭 ‘오보(誤報)전시회’를 하면서 ‘이승복 전시물’에 이런 설명을 붙였다. “반공 구호 앞엔 진실도 필요 없나?”란 제목 아래에 “나는 거짓말이 싫어요, (중략) 기사를 쓴 기자는 현장에 가지도 않고 현장 생존자도 만나지 않았다. 기사가 아니라 소설이었다”고 적었다.
조작설 유포 세력들은 원고지 1400자 분량의 이승복 기사 전체가 소설·작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시발로 김대중 정부의 비판 언론 탄압은 극에 달했다.
지난달 말 진실 공방은 법적 분쟁 8년 만에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법적으로 완결되었다. 비록 조작설을 처음 제기한 김종배는 ‘자신의 기사가 허위라는 인식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지만 그의 주장이 허위·억지임이 대법원에서 재확인된 것이다. 오보전시회를 주관한 김주언은 허위 인식을 갖고도 오보전시회를 강행했다는 이유로 유죄가 확정됐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게 끝인가? 이승복군의 유족들 가슴엔 피멍이 들었다. 수많은 초·중등학교에서 이승복 동상이 사라졌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이승복 부분이 지워졌다. 온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조작설을 제기한 인사들은 어떤가. 자신들의 과오를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고 있고, 유족들이나 신문사에 사과 한마디 없다고 한다. 이승복 조작설 유포로 유명 인사가 된 김종배는 지금도 MBC라디오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뉴스프로를 진행하고 있다. 김주언은 언개련 사무총장과 한국언론재단연구 이사를 거쳐 노무현 정부가 강행 통과시킨 새 언론법에 의해 설치된 신문발전위원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등 언론 주변 단체에서 승승장구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년은 거짓 폭로와 이를 통한 대중 선동이 판을 친 시대였다. 그리고 그들은 한때나마 성공하는 듯했다. 이렇게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사회는 정의롭지도 않고 발전할 수도 없다. 역사를 조작하려 한 자와 조작설을 퍼뜨린 자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유를 들어 자신을 옹호하려 하나 국민과 역사는 그들을 단죄하고 기록해서 다시는 이런 간교한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그 조작작업에 정치적 배경까지 숨어 있는 것이라면 그 진실도 밝혀져야 한다. 과거사 바로 잡기는 바로 이런 것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