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러분을 위해 더 오래 문 열겠습니다. 새로운 영업시간표에 주목하세요.” 독일 베를린의 부자동네인 첼렌도르프에 있는 슈퍼체인 ‘카이저’ 입구에는 이런 공고문이 붙었다. 금·토요일 영업을 밤 8시에서 밤 9시로 연장한다는 것.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이는 실상 독일에서 50년 만의 ‘생활 패턴 혁명’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상점은 평일 밤 8시, 주말 오후 4시면 문을 닫았다. 소도시에서는 토요일 오후 2시면 아예 철시(撤市)다.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는 늦은 밤과 주말 오후, 일요일 쇼핑을 생각할 수 없었다. 1956년 제정된 ‘상점 폐점법(Ladenschlussgesetz)’에 따른 것이다. 심지어 자동대여기를 통한 비디오 및 DVD 대여 영업도 상점 폐점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이런 독일의 모델에 따라 대형할인점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독일은 오히려 이 전통의 ‘상점 폐점법’을 폐지하고 있는 중이다. 그 동안 연방법률로 규정된 ‘영업 폐점 조항’이 지난 6월 ‘연방제도개혁’에 따라 주(州)의 권한으로 넘어간 게 단초가 됐다.
사민당(좌파)이 주의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하는 수도 베를린이 제일 먼저 앞장섰다. ‘6×24’(6일간 24시간 영업 자유)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일요일의 경우에는 연간 6번 문을 열 수 있게 했다. 이 법안은 지난달 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독일의 다른 대도시인 함부르크, 브레멘, 쾰른, 프랑크푸르트 등에서도 뒤이어 합류했다. 이에 대형유통업체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 소비촉진”이라며 일제히 환영했다. 최대 백화점 체인인 카우프호프와 칼슈타트 등은 “내년 1월부터 정규영업시간을 밤 10시까지로 연장해 소비자가 시간에 압박 받지 않고 쇼핑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독일노동총연맹(DGB)은 “유통업체 종사자들의 복지가 중대위기에 처했다”며 “폐점법 폐기에 대한 헌법 소원을 하겠다”고 반발했다. 유럽의 경제중심 독일에서의 ‘폐점법’ 폐기는 나름대로 세계화의 물결에 따라간 것이다. 조만간 인근 국가로의 파급도 예상된다.
하지만 쟁점은 과연 유럽인들이 오랜 생활 패턴을 바꿀 수 있을 것이냐는 데 있다. 토요일인 9일 밤 8시 20분, 첼렌도르프에 있는 슈퍼체인 ‘카이저’ 안으로 들어갔다. 이 넓은 매장에 쇼핑하는 사람들은 대여섯 명에 불과했다.
영업 시간을 연장해도 파장 분위기가 역력했다. 10개의 판매계산대 중 2개만 열려있고, 종업원들은 끼리끼리 모여 잡담하고 있었다. 독일 월드컵 당시 일시적으로 일요일 및 심야 영업이 이뤄졌을 때도, 그 시각 매장에는 손님들이 없었다. 지난 2000년 “영업 시간을 연장해야 하나”라는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72%가 “이대로도 괜찮다”고 답변했다. 유럽의 24시간 영업이 과연 정착될지, 현재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