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미국 새크라멘토에서 임신부가 살해됐다. 시신 일부가 없어졌고 범인이 피를 마신 흔적이 있었다. 사흘 뒤 1㎞쯤 떨어진 곳에서 36세 여성 등 3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25~27세 백인. 영양부족. 지저분한 집. 정신병 병력.’ 두 사건의 정황만으로 FBI 행동과학부 요원 로버트 레슬러가 추정한 범인의 특징이다. 경찰이 연쇄살인범 리처드 체이스를 체포하고 보니 레슬러의 분석과 놀랍게 들어맞았다.

▶사소한 현장 흔적과 범행 수법만으로 범인의 성격부터 성장배경, 생활환경, 심리상태, 직업까지를 짚어내는 작업이 프로파일링(profiling·범인 유형분석)이다. 피해자와 아무 연고가 없는 ‘묻지마’ 범죄이거나 물증이 거의 없어 수사가 막막할 때 유용하다. 정신병리학자와 범죄학자들이 하던 직관적 분석이 체계적 수사기법으로 자리잡은 것은 1972년 FBI에 행동과학부가 신설되면서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원작자 토머스 해리스도 FBI 분석전문가 ‘프로파일러’들의 도움을 받아 등장인물을 만들었다. 영화가 성공하면서 CSI(범죄현장 조사) 드라마들이 범람했다. 극중 프로파일러들은 마치 마법사나 심령술사처럼 범인 유형을 알아맞힌다. 그러나 프로파일링은 수사당국이 축적한 방대한 디지털 범죄자료를 컴퓨터로 분석하는 과학적 작업이다. FBI의 컴퓨터체계 ‘빅 플로이드’, 영국 국가경찰 컴퓨터 ‘(셜록) 홈스’가 밑천이다.

▶지난 10월 말 서울 술집에서, 보름쯤 뒤 천안 원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얼핏 연관이 없어 보였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는 현장수사가 한계에 부닥치자 프로파일링을 했다. ‘음주와 금전문제가 있고 저학력에 강도·살인전과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250건 넘는 강력범 검거보고서를 뒤진 끝에 천안 사건의 범인을 붙잡았다. 수사팀은 다시 서울 사건현장의 이쑤시개에 남은 DNA와 천안 범인의 머리카락 DNA를 대조해 동일범이라는 걸 밝혀냈다.

▶한국 경찰의 과학수사 수준은 서래마을 프랑스 영아 살해사건에서도 입증됐다.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자 프랑스 유력신문들은 “프랑스 경찰과 언론 모두 건방진 시선으로 한국의 수사결과를 무시했다”고 반성했다. 우리 경찰의 프로파일링은 2000년에야 시작됐고 프로파일러도 46명밖에 안 되지만 실력은 외국 CSI 드라마 뺨친다. 보다 과학적인 컴퓨터체계가 뒷받침돼 화성 연쇄살인사건과 개구리소년 사건의 실마리도 풀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