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란 황제'로 불리는 e게임 스타 이윤열은 한때 잘 나가던 정구 선수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경북 학생선수권을 휩쓸며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천식을 앓으면서 라켓을 놓았고, 실의에 빠져 PC방을 '전전'하다 오늘의 게임왕이 됐다. 이윤열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엔 친구들이 정구로 대학에 진학하는 게 너무 부러웠는데 지금은 너무 불쌍해 보인다. 은퇴 후엔 할 게 없기 때문이다."
메달 효자 종목 가운데 정구만큼 설움이 큰 종목이 있을까. 테니스와 경기방식이 비슷하지만 사람들은 정구가 정식 종목인지조차 잘 모른다. 아시안게임 때 금메달을 따면 반짝 주목할 뿐이다. 관심이 적은 만큼 선수층도 얇고 진로도 한정돼 있다. 여자의 경우 대학이 3개밖에 없어 고등학교 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 선수가 적으니 실업팀(남자 9개팀, 여자 8개팀)엔 어렵지 않게 들어간다. 하지만 실업팀을 나오면 직장 보장이 안된다.
대한정구협회 김민수 사무국장은 "선수 때는 사실 테니스 선수와 별 차이가 없지만 은퇴를 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며 "테니스는 강사라도 하지만 정구를 그렇지 못하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동호인이 없고 오로지 선수만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정구선수들이 테니스를 배워 테니스 강사로 돌아서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구에 입문하는 아이들의 수는 점점 줄어든다. 그나마 소년체전이 끝나면 절반 이상 그만둔다.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도 정구는 최정상의 기량을 선보이며 아시안게임을 석권했다. 1994년 히로시마 대회 금메달 2개를 시작으로 지난 3개 대회에서 금메달만 11개를 땄다. 특히 4년전 부산대회에서는 7개 전종목 싹쓸이 신화를 남기기도 했다. 지난 2년간 침체기를 겪기도 했지만, 케미컬 코트에 대한 적응력을 기르면서 이번 대회에서도 벌써 금메달 2개를 안겼다. 당초 4개 정도를 예상했지만 이런 추세라면 6개도 가능할 전망이다.
김 사무국장은 "한국 정구가 세계 정상권이기 때문에 연금받는 선수 수가 50개 경기 단체중 1-2등을 다툰다"며 "비인기의 설움을 그나마 달랠 수 있는 힘"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