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피의자가 하려는 말을 못하게 합니까?"(검사)
"지금 변호인의 조력을 못 받도록 막는 겁니까?"(변호사)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9층 공안부 조사실. 지난 20여일간 이 곳에서는 간첩 피의자를 사이에 두고 검사와 변호사들이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계속 연출됐다. 간첩 피의자를 설득해 진술을 받으려는 검사와 묵비권을 권유하는 변호사가 사사건건 충돌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회장보다 잦은 접견
386세대 간첩 조직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은 송찬엽 공안1부장검사를 포함해 모두 11명의 공안 검사를 투입했다. 이에 맞서는 공동변호인은 모두 37명. 이런 대규모 변호인단이 장민호 등 5명의 피의자들을 접견한 횟수는 111회가 넘는다. 장민호 등이 10월 26일쯤 구속된 점을 감안하면 한달 남짓한 기간에 하루 평균 3~4차례씩 접견을 한 것이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변호사들이 번갈아 나타나 접견해 수사의 맥이 끊기고 심한 경우는 (피의자를) 어렵게 설득해 진술하려고 하면 묵비권을 행사하도록 종용한다"고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거액의 변호사 비용을 냈다는 재벌 회장들 수사에도 변호사들이 이렇게 열심히 찾아와 접견을 하고, 조사 과정에 참여한 적이 없다"며 "변호사들의 이런 행태는 피의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보다는 접견을 빙자한 일종의 '준법 투쟁' 같다"고 말했다.
일반 서민 피의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재벌 회장의 횡령이나 고위 공무원 뇌물과 같은 특수수사 사건의 경우도 점심 시간 등을 전후해 10여분씩 접견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사건처럼 매일 피의자들을 1시간 이상을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서민들은 구속사건이나 돼야 겨우 국선변호사를 선임하는데, 간첩 사건에 수십 명의 변호사들이 붙어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씁쓸하다"고 했다.
과도한 접견 횟수도 문제지만, 한 변호사가 20~30분씩 모든 피의자들을 돌아가면서 만나고 있는 접견 방식이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일부 변호사들은 피의자들을 차례대로 접견하면서 옆방에서 진행된 신문 내용을 다른 피의자에게 전달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라면서 "수사에 대한 변호사들의 방해가 너무 심하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피의자들에 대한 접견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인데도 검찰이 수사편의를 위해 변호인 출입에 불평하는 것은 시대착오"라며 검찰을 비난하고 있다.
◆포섭 리스트 변호사도 접견
급기야 검찰은 지난달 22일 변호인단의 대표격인 김승교 변호사의 접견을 전면 금지했다. 김 변호사가 주범인 장민호의 포섭 리스트에 올라있다는 게 이유였다. 김 변호사는 송두율씨 사건 등 국가보안법 사건의 단골 변호사이고, 그가 상임대표인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친북·반미 성향을 보여왔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정당한 접견권을 검찰이 방해한다"면서 법원에 준항고를 냈다. 검찰은 "김 변호사의 접견이 계속 허용되면 수사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지난달 29일 김 변호사의 준항고를 받아줬다. 검찰은 "법원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면서 대법원에 재항고를 냈다. 검찰은 이 사건 관련자 5명을 오는 8일 한꺼번에 기소할 방침인데, 김 변호사 문제가 법원·검찰 간 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