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서울 영등포역 앞 보도의 노란 점자블록을 따라 걷다 보면 별안간 뚝 끊기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시각장애인이 이 블록을 의지해 걷다간 졸지에 방향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여의도 앙카라 공원에는 장애인용 화장실은커녕 휠체어가 올라 갈 수 있는 경사로조차 없다. 지하철 공사가 한창인 당산역 앞은 공사용 복공판들이 보도를 파먹고 들어온 탓에 노약자나 임산부들은 혹여 걸려 넘어질까 노심초사해야 한다. 장애인용 화장실이 일반화되고 노약자용 승강기가 곳곳에 생기는 등 많이 좋아졌다지만, 약자(弱者)들이 다니기에는 여전히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년 뒤면 이런 문제가 많이 사라질 전망이다. 사단법인 주거복지연대와 영등포구가 손잡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도시환경개선사업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2008년 말까지 주요 건물 문턱, 엉터리 점자블록, 비좁은 보도 등을 바꿔 임산부·장애인·노약자가 걱정 없이 다니는 무장애(無障碍·barrier free) 도시로 꾸미겠다는 것이다.

이 사업은 지난 8월 한국토지공사가 지원하는 '초록사회 만들기' 공모에 채택돼 1억5000여만원을 지원 받는다.

<이런 곳 없어져요>노약자나 임산부들이 넘어지기 쉬운 한강시민공원 앞 보도

주거복지연대(동작구 대방동)의 이웃인 영등포구청이 "함께하자"는 제의를 받아들여 민관(民官) 연대가 가능해졌다. NGO가 '설계'하고 관(官)이 '시공'을 맡는 식이다.

인구 40만8000여명의 영등포구는 여의도의 최첨단 금융가부터 낙후된 주거지역까지, 대형백화점부터 재래시장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서울의 축소판. 주거복지연대는 지난 10월 말부터 25일 동안 주요 시설 240곳에 조사요원을 보내 장애인용 시설 실태를 조사했다. 지역 내 모든 초등학교·전철역·유통상가·재래시장·관공서와 교통량이 많은 주요 네거리들이다.

휠체어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턱은 제대로 설치됐는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이 엉뚱한 방향으로 나 있지는 않은지 꼼꼼히 조사했다. 결과는 '몸이 불편한 이들이 도시 생활에서 똑같은 안락함을 누리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

철새와 물고기들을 좀더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만든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의 나무다리는 다리 진입부에 놓인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턱 탓에 휠체어 이용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됐다. 최근 지어진 대형 할인점의 장애인용 경사로에도 각종 물건이 놓여 있어 제대로 이용하기 어려웠다. 여종건 주거복지연대 위촉연구위원은 "비좁은 인도에 구둣방이 들어서 있어 휠체어가 다닐 엄두를 내지 못하는 등 기본적 조정이 필요한 곳도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13일 주거복지연대는 영등포구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무장애 도시 조성계획 수립과 실천을 위해 관련 학자·건축가 등 위촉위원 8명과 장애인·노약자·어린이 등 민간위원 8명으로 구성된 '배리어 프리 위원회'도 구성했다.

앞으로 주거복지연대가 심층 실태조사를 통해 개선사항을 제시하면 구는 예산을 들여 실행하게 된다. 남상오 주거복지연대 사무총장은 "대부분의 여성은 한번 이상 임신하게 되고, 누구나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만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은 배려가 아닌 당연한 의무"라며 "다른 24개 구에 확대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