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세기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럴듯한 질문이지만 쉽게 답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이다. 얼핏 짚어보아도 한국의 20세기는 대한제국의 멸망과 식민지 지배, 민족해방과 남북분단, 동족상잔과 체제경쟁, 경제발전과 세계진출, 냉전완화와 남북교류 등으로 이어졌다. 또 그것은 전쟁과 혁명, 파괴와 혁신, 분열과 통합, 냉전과 화해 등으로 표상되는 20세기의 세계 역사와 공명하며 전개된 우여곡절의 역사였다.
그런데 최근 이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한 역사를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새롭게' 조망해보려는 두툼한 책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올해 2월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전2권)과 이번에 발행된 '근대를 다시 읽는다'(전2권)가 그것이다. 두 책은 거의 같은 시대와 주제를 비슷한 분량으로 다루면서도 편찬 의도가 명백히 다르다. 전자는 1980년대에 출판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시정하고 극복할 것을 표방했다. 후자는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모두 비판하며, 이에 대신하는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전자에 대해서는 출간과 동시에 찬·반 논쟁이 거세게 일어났는데, 후자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근대를 다시 읽는다'는 주로 2000년 이후에 발표된 다양한 주제의 연구 중에서 편집자들이 한국의 근대를 새롭게 보는데 적당하다고 판단한 논문들을 선택하여 편집한 것이다. 수록된 28편의 논문을 전공에 따라 분류하면 역사학과 문학이 20여 편, 정치학·사회학·경제학·인류학·종교학·교육학 등이 한두 편씩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다방면에 걸친 논문 하나하나에 대해 논평하기보다는 편집자의 의도가 잘 반영된 각 부의 주제에 대해 언급하는 게 책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의 식민지 경험과 국민형성에 관련된 논문들을 수록한 제1권(1~3부)은 한국근대사를 '식민지 근대''대일협력''국민국가의 형성과 균열'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 그 중에서 "모든 근대는 식민지근대이다"라는 자극적 부제를 단 1부는 지배와 저항 사이에 존재했던 다양한 스펙트럼의 조선인 상과 조회라는 학교규율을 통해 형성된 굴절된 내셔널리즘의 모습을 보여준다. '친일'을 '협력'이라는 개념으로 바꿔 성찰하려고 시도한 2부는 조선인 내선일체론자의 전향과 동화의 논리 등을 통해 식민지에서의 국민형성을 살펴보고 있다. 3부는 대한민국과 국민만들기라는 주제 아래 한국전쟁이 사회의식 및 생활문화에 미친 영향과 박정희체제의 지배담론 등을 다루고 있다.
문화현상, 담론비판, 하위주체와 관련된 논문들을 담은 제2권(4~6부)은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제시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 중에서 개인의 행위를 통해 근대성과 새로운 문화를 더듬어 본 4부는 일제 아래에서의 책읽기, 연애, 영화, 검열 등을 통해 조선인이 어떻게 근대에 대응해갔는가를 그리고 있다. 5부는 근대인식과 담론분석에 관한 논문을 싣고 있는데, 민족주의 청년담론, 민족개조논쟁, 근대철학 수용 등을 통해 조선인 엘리트가 근대를 어떻게 고민하며 받아들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민중의 경험과 기억을 다룬 6부는 하위주체가 전쟁과 노동 등의 경험을 어떻게 역사에 기록해왔는가를 묻는다.
이 책은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젊은 인문·사회과학자들이 20세기의 한국사를 어떤 시각과 방법으로 연구해왔는가를 짚어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들의 지향은 각양각색이지만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민족주의나 민중주의, 국가주의나 개발주의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요컨대 탈(脫)민족주의와 탈(脫)근대주의를 모색하고 있다. 편집자들은 이 점을 부각시켜 '낡은 근대'에 대한 '젊은 비판'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여기에서 '낡은 것'은 민족주의·민중주의를 주창한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근대주의· 개발주의를 옹호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전공의 벽을 넘어 다양한 시각과 방법을 통해 20세기 한국사를 다각적으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변화가 넓고 깊었던 시대를 하나의 도구와 잣대로 연구하고 평가하는 것은 원래 벅찬 일이었는데 불구하고 종래에는 이런저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단순명쾌 하게 재단하고 논평하는 만용이 유행했다. 이 책은 그 한계를 직시하고 각 학문의 융합을 통해 20세기의 파란만장한 한국사 상을 보여주려고 고민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편집자들의 입맛에 잘 맞지 않는 논문도 섞이게 되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과 첨예하게 대결하겠다던 당초의 의도가 많이 무뎌졌다. 다채로운 모습을 그리고자 하는 점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 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라는 거창한 부제를 달 바에는 이에 걸 맞는 논문들을 새로 집필하여 묶었더라면 역사 논쟁을 생산적 방향으로 이끄는 데 훨씬 더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