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시험 문제(논제)와 제시문의 공통된 형식으로 두 가지를 볼 수 있다.
첫째, 하나의 문제(논제)에 대해서 여러 제시문이 주어지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6개의 제시문들을 입장에 따라 2개의 집단으로 나누고 그렇게 나눈 이유를 설명하라는 문제이다. 둘째, 하나의 제시문에서 쟁점 등 두 가지 입장에 관해서 묻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제시문의 내용이 타당한지, 부당한지 논술하라는 문제이다. 이들 문제들이 요구하는 바는 분명하다.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관계는 인과 관계, 통상 관계, 압력과 부피의 관계 등 무수히 많다. 제시문의 내용에 따라서 이들 관계가 쉽게 파악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관계를 파악하는 가장 친숙한 방법은, 유사한 관계나 상반된 관계를 찾는 것이다. 유사하거나 상반된 개념들, 근거들, 주장들을 비교할 수 있다.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글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흑백논리 등 단순한 관계만을 이용하여 비교하는 것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지문들 간의 관계나 하나의 지문 안에서 두 주장들의 관계가 쉽게 파악될 수 있지만 이 관계를 그대로 이용하는 데 주의해야 한다.
평가자는 그 관계의 보다 깊은 의미나 새로운 내용을 보기 원한다. 따라서 숨은 의미를 파악하듯이 숨은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구체적이고 참신한 관계를 파악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개념의 나무를 이용할 수 있다.
하나의 개념으로부터 관련된 다른 개념을 계속 도출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한 제시문 내에서 개념 및 주장으로부터 관계를 도출하거나 여러 제시문들의 개념 및 주장들의 관계로부터 또 다른 관계를 도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음 제시문을 보자. 문제(논제)는 아래 제시문에서 우리 삶을 시장 경제에만 맡기는 경고가 정당한 것인지 아니면 과도한 것인지 논술하라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 환경의 운명이 순전히 시장 메커니즘 하나에 좌우되면 결국 사회는 폐허가 될 것이다. 구매력의 양과 사용을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결정하는 것도 같은 결과를 낳는다. 비록 사람들은 '노동력'도 똑같은 상품이라고 우겨대지만… 그 특별한 상품을 몸에 담은 인간 개개인은 반드시 영향을 입게 마련이다. 이런 체제 아래서 인간의 노동력을 소유자가 마음대로 처리하면 노동력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인간'이란 육체적, 심리적, 도덕적 실체마저 소유자가 마음대로 처리하게 된다… 인간과 자연이란 사회의 실체와 경제 조직이 보호받지 못한 채 그 '악마의 맷돌'에 노출되면 어떤 사회도 무지막지한 상품 허구의 경제 체제가 몰고 올 결과를 한 순간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 Karl Polanyi, '거대한 변환')
우선, '시장', '경제 체제', '상품', '노동력', '인간', '도덕적 실체' 등의 핵심 개념을 파악할 수 있다. '시장 경제 체제'로부터 개념의 나무를 만들어 보자.
시장 경제 체제 → 수요와 공급의 원리 → 법칙 → 필연성 →(…)
시장 경제로부터 관련된 개념 간의 연결을 통해 필연성을 도출하였다. 이 관계로부터 한 가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자연이 자연 법칙의 필연성을 따르는 것처럼 시장 경제도 관련된 법칙의 필연성을 따라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위 제시문의 답은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그런 답의 이유는 무엇인가? 시장 경제 법칙은 자연 법칙과 다르기 때문인가? 어떻게 다른가? 개념의 나무를 만들지 않고 이들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개념의 나무를 만들면 보다 쉽게 자연스런 관계를 도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다양한 질문을 제기하여, 글의 방향을 결정하는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
(김준성·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글쓰기교실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