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느가 살롱 뒤에 있는 방문을 노크했다.

콜랭이 동양에서 수집한 물품들을 진열해 놓았던 방이다. 아무 대답이 없자 잔느가 방문을 슬며시 밀어보았다. 리진이 솜을 두껍게 넣어 만든 보료 위에 앉아 손 부챗살을 둘러싸고 있는 하얀 공단에 수를 놓고 있다. 엊그젠 장미 문양이더니 오늘은 도마뱀이다.

―마담!

리진은 잔느가 노크를 한 것도, 방문을 연 것도, 자신을 부르는 것, 도 모른 채 수 놓기에 빠져있다. 코 고르당의 저택에서 벌어진 무도회에서 복통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간 뒤에야 아기가 유산 된 것을 알게 된 석 달 동안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벌써 일년이 지난 얘기다. 아기가 생긴 것도 몰랐는데 유산이라니. 리진은 아기의 유산과 함께 파리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린 듯 여간해서 외출도 하려 들지 않았다. 겨우 집 근처의 외방 전교회에 나가 아시아의 대형 지도를 바라보거나, 앵발리드 광장으로 나가 서넛이 패를 이루어 거리를 활보하는 군인들을 바라본 것이 전부였다. 콜랭이 센 강가에 나가보자 하여도 리진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콜랭이 모파상을 찾아가 묘지라도 괜찮으니 리진을 데리고 외출해 줄 것을 부탁한 적도 있었다.

리진이 말을 하게 된 건 이 동양의 방 덕분이었다. 리진이 말을 끊어버린 어느 날, 콜랭은 리진을 위해 이 방에 진열되어 있던 동양 물품들 중 조선에서 가져온 것들만 따로 챙겨 놓고 책은 책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분류해 기메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리고는 잔느의 도움을 받아가며 이 방을 조선의 규방처럼 꾸몄다. 방을 다 꾸민 콜랭이 마치 숨겨놓은 신세계를 보여주려는 사람처럼 리진의 눈을 가리개로 가리고 눈을 꼭 감아요, 꼭 감아! 하며 리진을 이 방으로 데려왔다. 콜랭이 과장된 제스처를 부리며 방문을 열고 눈을 가리고 있던 가리개를 풀어 주었다. 리진의 반응을 기다렸으나 리진은 그저 멍하니 방안 풍경을 응시하기만 했다. 조선을 떠날 때 왕비가 하사했던 모란도가 걸려있는 벽을 우두커니 보고 서 있었다. 국화가 그려진 단아한 백자를 나비와 새가 화려하게 박힌 두 단짜리 화각 농 위에 올려 놓으며 가졌던 콜랭의 기대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소나무가 그려진 보석함이나 바닥에 내려놓고 들여다보는 참나무로 된 거울은 보지도 않는 것 같았다. 솜을 넣어 만든 푹신한 조선 보료가 바닥에 깔면서 당연히 리진이 기뻐할 거라 여겼으나 리진은 가만 보기만 했다. 보료 위엔 올려놓은 팔을 받칠 수 있는 팔 베개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길다란 창이 뚫려있는 곳을 가려놓은 병풍을 가리켜도 리진은 그저 시들한 듯 했다.

―당신에게 해 줄 것이 이거밖에 없는 게 서글프오

리진을 동양풍으로 꾸민 방으로 데려오며 기대에 차 있던 콜랭이 흥이 사라진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을 때야, 조선의 규방처럼 꾸며진 방안을 바라보고만 있던 리진이 고마워요, 콜랭, 속삭이며 콜랭의 뺨에 키스를 했다. 콜랭은 그제서야 환하게 웃었다. 유산을 한 뒤에 리진이 처음 한 말이었다.

잔느가 다시 마담! 하고 불렀다. 그래도 리진은 수놓는 일에 빠져 대답이 없다.

―마담, 손님이 찾아왔어요.

잔느가 두 번이나 더 불렀을 때야 리진이 고개를 들었다. 오페라 극장에서 카르멘을 관람하거나, 코 고르당의 저택의 무도회에서의 생기에 차 있던 리진의 모습이 아니다. 홍조가 발그레하던 뺨엔 깊은 우수가 드리워져 있고, 단단하게 상체를 받쳐주던 목덜미는 야위어 뼈가 드러나 있다.

―누구?

―처음 뵙는 수녀님이에요. 외방전교회에서 오신 것 같은데.

외방 전교회? 리진의 눈이 반짝 빛이 났다.

―살롱으로 모시고 차를 대접해. 곧 나갈께.

야윈 모습과는 달리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낭랑했다. 수를 놓고 있던 손부채를 보료 위에 내려놓은 리진이 참나무향이 풍기는 앉은뱅이 거울을 끌어당겨 얼굴을 비춰보았다. 틀어 올린 머리에서 빠져 나온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손가락도 야위어 뼈가 드러났다.

리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움푹 팬 검은 눈동자를 깊이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