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동 정책’이라는 그림에서 늘 ‘최대 악당’으로만 등장하던 이란과 시리아가 갑자기 난마(亂麻)처럼 얽힌 중동 사태의 열쇠를 쥔 서방의 ‘협력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평화뿐 아니라, 레바논의 위태로운 민주주의 정착, 하루 100명씩 민간인이 죽어나가는 이라크의 안정화를 위해서 두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미·영의 새 중동 파트너?
이란과 시리아가 현재의 각종 중동 사태 배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은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다만, 서방은 지금까지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 시리아의 레바논 정정(政情) 위협이라는 직접적인 '위협 요소'를 제거하는 데 더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미군 2800여 명이 숨진 이라크전 수렁 속에서 중간 선거마저 패한 부시 행정부나, 이라크에 7500명을 파병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로선 이 국가들의 '긍정적' 가치를 이제 더 이상 묵인할 수 없게 됐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13일 "이라크 전쟁이 '내전'으로 성격이 변했으므로, 서방의 중동 정책도 진화(evolve)해야 한다"며 "여기엔 이란·시리아와의 새 파트너십도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즉, 이라크 혼란은 이제 '서방의 정책 오류' 차원이 아니라, 내전을 야기하려는 이라크 밖 세력들에게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란의 경우, ▲이스라엘 파괴를 목표로 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 ▲레바논의 친(親)이란 정치·무장조직인 헤즈볼라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를 지원해서 "자국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좌절시키려고 이 약점들을 악용한다"고 비난했다. 블레어는 이란이 "레바논·이라크의 테러 지원을 중단하고 중동 평화 노력을 도와 서방과 '새 파트너십'을 구축하든지, 국제사회의 고립을 선택하라"고 말했다.
미 백악관 역시 두 나라와 대화를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BBC 방송은 전했다. 공화·민주 양당이 구성한 이라크연구그룹(ISG) 역시 부시 행정부가 이란·시리아 정부와 직접 접촉을 확대하는 것에 우호적인 견해라고 뉴욕 타임스는 14일 보도했다
◆이란·시리아 반응
이마드 무스타파 주미(駐美) 시리아 대사는 "우리가 요술지팡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문제 해결의 한 부분이 되고 싶다"고 미·영의 접근을 환영했다. 그러나 "먼저 미국은 이라크 정책의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란 외무부의 모하마드 알리 호세이니 대변인은 "미국이 진정으로 이란과 대화하고 싶으면, 공식적으로 제안하라. 그러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