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시험으로 창의성을 재겠단다. 하지만 창의적 사고를 '기르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정작 아무도 명쾌하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 구양수의 삼다(三多)는 이제 들먹이지 말자. 너무나 막연하니까!
그렇다고 요즘에 쏟아져 나오는 논술 관련 참고서나 단행본들이 해결책일까? 역시 망설여진다. 억지로 생각을 쥐어짜서 힘들게 답안을 작성하는 식의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다. 더구나 시험을 보고 나면 더 이상 책 읽기도 싫어하고 글쓰기도 꺼리게 만들기까지 한다.
'101가지의 철학 체험'(로제 폴 드르와, 샘터)은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들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프랑스 국제철학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신문 '르 몽드'에서 오랫동안 활동중인 컬럼리스트답게 일상에서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철학적 체험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실제로 이 책은 마치 심심풀이 놀이하듯이 자연스럽게 철학적 사고를 촉발하고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아이디어들로 가득 차있다. '자동차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기', '햇살 속의 먼지 관찰하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기다리기', '태양 아래서 엎드려 자기', '벽난로에 불 피우기', '헌책방 순례하기', '아무에게나 미소 짓기', 'TV 소리 끄기', '전화선 뽑아놓기','어디 가는 데도 없이 지하철 타기', '어린 아이와 놀기' 등등.
저자는 일상의 고정 관념을 단박에 깰 수 있는 아이디어들도 풍부하게 곁들인다. '어떤 사고나 관념에 대해 폭소를 터뜨리기', '아무데서나 연기하기', '하늘의 별들을 아래로 내려다보기', 심지어 '사고하지 않으려고 시도하기'까지 있다.
물론 문화 차이 때문인지 쉽게 이해하기 힘든 제안들도 담겨 있다. '순간적인 고통을 유발하기', '오줌 누면서 물 마시기', '공원 묘지에서 달리기', '머리 속에서 살인하기' 등. 하지만 '영화 보면서 울기'란 사회적으로 규정된 자아가 주는 제약에서 탈피하는 도전이며, '여러 개의 인생 만들기'는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여러 개의 아이디로 다른 삶을 사는 다중 자아와 관련 지을 수 있는 등, 본격적인 사유의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실마리들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화두집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아무 쪽이나 펼쳐서 가볍게 읽으면서 진지하게 생각을 펼칠 수 있기에 딱 좋은 책이다. 일단 차례만 살피면서 읽어도 좋겠다. 공감한다면 동그라미, 그렇지 않으면 가새표, 글쎄 싶으면 세모. 이렇게 표시하면서 읽어가다가 마치 저자처럼 자신의 아이디어를 덧붙여 보면 금상첨화다. 오랫동안 저녁 노을 쳐다보기, 아무 배경 지식 없이 고대 문서 읽으려 애쓰기 등은 금세 덧붙이고 싶은 아이디어다.
이 책의 마지막인 101번째 제안은 여기서 굳이 소개하지 않겠다.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규범적인 시각이라면 공감하기 어려울 테니까. 하지만 사고의 즐거움이란 그 어떤 제약도 넘어설 때 거둘 수 있는 수확이다. 청소년들이여, 101번째 제안을 직접 확인해 보라. 정말 '프랑스적'이다!
(허병두·숭문고 국어교사,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