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왕이 큰 잔치를 벌이기로 했다. 신하들에게 "음식은 내가 낼 테니 포도주를 한 병씩 갖고 오라"고 일렀다. 잔칫날, 신하들이 커다란 술독에 저마다 포도주를 쏟아부었다. 왕이 술독에서 한 잔을 퍼 들이켜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건 포도주가 아니라 물이었다. 신하들은 모두 나 하나쯤 술 대신 물을 부어도 모르려니 했던 것이다.
▶손님이 양심껏 값을 치르고 거스름돈도 알아서 챙겨가는 전남 장성군 북하면 신촌마을회관의 무인(無人) '양심가게'에 감시용 CCTV가 설치됐다. 이곳이 널리 알려지면서 외지인 발걸음이 잦아지더니 도둑을 맞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돈통이 털리는 일도 10여 차례 있었다고 한다. 한 달에 100만원 넘게 도둑을 맞게 되자 가게를 운영해 온 마을 이장이 견디다 못해 CCTV를 달았다.
▶양심이란 시비(是非)와 선악(善惡)을 분별하는 내면의 기준이다. 우리는 늘 그 양심과 숨바꼭질하며 산다. 그른 일이라도 해서 이득 보겠다는 이기심과 그른 일을 할 때 생기는 내면의 부끄러움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양심을 천금처럼 무겁게 여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깃털처럼 가볍게 아는 이도 있다. 문제는 너나없이 양심이 누더기가 돼 버린 시대엔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해도 별반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자선 모금함 곁에 사람 모양 로봇을 갖다 놓았더니 돈이 30%가량 더 걷히더라는 연구가 있다. 사람들이 로봇의 시선을 의식했다는 뜻이다. 영국 뉴캐슬대 교직원식당에선 각자 알아서 커피값을 치른다. 심리학자들이 그곳 자율계산대 메뉴판에 사람 눈 사진을 붙여 놓았을 때와 꽃 그림을 걸어 뒀을 때의 차이를 관찰했다. 눈 사진이 붙어 있을 때 걷힌 돈이 2.8배나 됐다고 한다.
▶장성 양심가게엔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겸해 견학 오곤 했다. 어느 대기업은 양심가게를 소재로 삼은 TV 공익광고를 내보냈다. 우리 사회 한구석에 그런 곳이 있다고 다들 흐뭇해했었다. CCTV를 달아 놓으면 물건을 슬쩍 들고 가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감시해야 똑바른 행동을 한다면 그건 양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속 갈등을 이겨내고 나온 행동이라야 진짜 양심이 시키는 행동이다. 장성 양심가게에 CCTV가 필요없게 돼 철거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한삼희 논설위원 shh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