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중학교에서는 특이한 마을 운동회가 열렸다. 내년 1월 말 완공되는 동탄지구 현대아이파크 입주 예정자들이 스스로 연 운동회다. 바비큐를 하고, 가져온 쌀밥·육개장 등도 서로 나눈 '예비 주민'들의 마을잔치였다. 비가 올 것이라고 예보돼 '겨우' 100명만 왔다. 지난 8월 운동회 때는 '무려' 400명이 왔었다. 축구와 발 야구를 비롯, 동(棟)대항 이어달리기, 짝수동 대 홀수동의 줄다리기, 부인 업고 뛰기, 어린이 그림대회 등이 펼쳐졌다. 기념품으로 발코니에 놓을 화분도 나눠가졌다.

◆단지별 홈페이지도 개설
이들은 2년 전 아파트 당첨 직후 인터넷 모임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주말이면 화성의 농장으로 가 함께 원두막을 세우고 흙도 고르는 등 친분을 쌓게 됐다. 주부 이덕경(34)씨는 "7년째 사는 수원의 지금 아파트보다, 새로 이사 갈 아파트의 이웃과 더 친하다"고 했다.

현대아이파크뿐 아니다. 동탄지구의 아파트단지 37개 모두에 이런 모임이 만들어졌다. 단지별 홈페이지 개설 프로그램을 지원해주는 부동산포털 '닥터아파트'는 "전국적으로 924개의 '입주 예정자 모임' 사이트가 있고, 가입 회원도 19만명이나 된다"고 했다.

◆수도꼭지 선택까지 꼼꼼히 참견
미리 만난 이웃들은 '건설감리관' 역할도 한다. 골조공사부터 마감까지, 발코니 모양부터 수도꼭지 선택까지 꼼꼼하게 '참견'한다. 설계도나 모델하우스와 슬그머니 달라진 것은 없는지, 시대에 뒤떨어진 옵션은 없는지도 살핀다. 동탄신도시 입주 예정자 김기선(37·화성 병점)씨는 "주민이 힘을 합쳐 건의해 아파트 외벽의 자재와 색깔, 주방 옵션을 최신형으로 바꿨다"고 했다.

화성시 동탄지구 현대아이파크 입주 예정자들이 주민운동회에서 단체로 줄넘기 시합을 벌이고 있다.

대단위 택지지구만의 얘기도 아니다. 내년에 인천 서구 불로동 삼보해피하임아파트에 입주하는 임종훈(33)씨는 "이사한 다음에 시공사와 다퉈봐야 늦는 것 아니냐"며 "미래의 이웃들과 자주 답사해 그때그때 고쳐달라고 요구한다"고 했다.

건설사가 수용하지 않으면 시위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공사들도 이를 '대세'(大勢)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처음에야 당황스러웠죠. 하지만 이젠 주민들과 함께 가지 않으면 희생이 더 커진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현대산업개발 김진웅 공무과장은 "아파트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도 주민 의견을 반영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제 아파트 실세는 '젊은 오빠'
아파트는 원래 주부들 입김이 센 곳. '업무공간'이 아니라 '주거공간'이어서, 자연스레 주부들이 아파트 관리업무에 동참해왔다. 그러나 온라인 입주자모임 운영진은 대부분 젊은 남성이다.

동탄신도시 입주자연합회장 남기성(39)씨는 "37개 단지별 사이트 운영진 400명 가운데 80%가 30~40대 남자"라며 "아무래도 젊은 남성이 인터넷에 좀 더 능숙하고, 건설업체를 상대하기도 쉽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용인 동백지구 입주자대표회장 박재영(48)씨도 "운영위원 50명 중 여자는 1명뿐"이라고 했다.

◆카풀도 생활화
이런 식으로 미리 만나 우의를 다지고 단결력도 과시해온 주민들은 입주 후 모습도 화기애애하다. 2003년 8월 분양 후 '동백사랑'이라는 입주 예정자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입주한 경기도 용인시 동백지구도 그렇다. 전재현(40)씨는 "단지 안에 형님·동생 하는 사람만 수십 명"이라며 "전에는 소주 한잔 생각나면 친구들을 만났는데, 요새는 위층 지석이네, 옆 동 혜진이네로 간다"고 했다. '카풀(car-pool)'이 생활화되기도 한다. 김미현(35)씨는 "출근길이나 외출 시각이 비슷한 이웃을 인터넷으로 찾아 함께 가곤 한다"며 "술 마시고 비틀거리며 귀가하는 이웃을 태워주는 풍경도 가끔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