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기업의 민영화가 한창 진행될 때 정부출연연구기관도 민영화에 포함되었다가 정부 내부의 반발로 철회된 후 이를 대신하여 각 연구기관의 경쟁력을 제고하고자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는데 이것이 바로 PBS(Project Base System : 연구과제중심제도)다. 이 제도는 각 연구기관 인건비의 35~40%만 정부가 보장해 주고 나머지 인건비는 연구과제 수주를 통해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한 것이 주 내용으로, 올해로 시행한 지 만 10년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출연연구기관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 제도가 시행된 이듬해 IMF관리체제로 되면서 출연연에도 정리해고가 시작되어 그 기준에 인건비확보율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위기감을 느낀 연구원들은 연구는 비정규직을 채용하여 맡겨 두고 연구실 밖에서 용역수주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살아남기 위하여 수탁과제에 치중하고 여러 과제를 수행해야 인건비를 채울 수 있게 돼, 출연연의 특성에 맞는 연구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나타난 연봉제에서도 인건비 확보율이 개인연봉의 큰 비중을 차지함에 따라 연구원들은 연구수주경쟁에 뛰어들어야 했고 본인의 인건비에 비정규직 인건비까지 벌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출연연 과학자들은 앵벌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연구 환경에 회의를 느낀 연구원들은 대학으로 썰물같이 빠져나갔고 출연연은 인건비를 벌기 위하여 당장 연구에 투입하여 연구결과를 낼 수 있는 박사급 연구원만 채용하게 되어 대졸 이공계출신 취업까지 막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연봉제에 따른 평가에서도 개인연구비율과 연구원 간 상대평가에서 높은 고과를 받기 위하여 연구비를 부풀려 신청하는 사례가 늘었다. 동료 연구원을 외면하고 값싼 민간연구소에 용역을 위탁하여 부실연구를 낳는 사례도 생겨났다. 연구원 내에서도 각 연구원에 주어지는 기관고유사업을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연구기관장에 학연, 지연을 통해 줄을 대게 되고 나아가 연구기관장 선임을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대는 연구원이 생겨나게 되었다. 연구과제가 보직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여기에 성공한 연구원은 참여연구원들이 논문에 이름도 넣어 주게 되어 능력 있는 연구원이 된다. 앞으로 능력 있는 연구원은 정년도 연장된다 하니 이 다툼은 더욱 치열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과제도 기관장 임기인 3년을 넘는 경우는 드물며 연구책임자도 당연히 바뀌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과학연구는 학문적 목표가 같은 사람끼리 함께 모여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대학과 달리 다양한 전문가가 모여 있기 때문에 연구원 간에 서로 협력하여 시너지효과를 거둬야 좋은 연구결과를 낼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 학연이나 지연에 의한 특정한 분야나 특정한 연구원에 편중된 연구비 배분은 지양되어야 하며 연구비 수주보다는 연구결과에 엄격하고 책임지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유재명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