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 버전의 '도끼병'이 돌고 있습니다. '모두 날 찍었어'라는 공주병이 아닙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병이죠. '도끼병' 환자들은 매사에 활기 넘치고, 열심입니다.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죠. 일단 해보고 나서 생각하자는 주의입니다.

한 번 해보는 것까지야 괜찮죠. 그런데, 분명 안 되는 일로 판명이 났는데도 쉽사리 수긍을 못합니다. 열정이야 십분 이해하고 박수를 칠 일입니다. 그렇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죽을 맛입니다. 어떤 회장님은 앞서가는 사람 발목잡지 말고 잘 도와줘야 회사가 잘 된다고 말씀하셨다지만, 이런 사람들이 이리저리 찔러대고 들이대는 걸 다 쫓아다니며 뒤치다꺼리 하다가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안 될 일도 되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오직 'Just Do It'을 슬로건으로 삼은 이들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이들에게 속내를 물으면 "나도 힘들다, 하지만 나라도 나서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걸 어쩌냐. 언젠가는 내 진심을 인정해주리라 믿는다"고 대답합니다. 이들이 없다면 정말 난국은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요? 물론 도끼 한 자루 들고 앞장서는 사람이 있으면 정글을 헤쳐 나갈 때 좋지요. 하지만 혼자서만 너무 앞서가면서 따라오지 못한다고 재촉하고, 돌아가도 그리 늦지 않을 길을 빨리 가자면서 위험천만한 곳으로 사람들을 몰고 간다면 그건 문제입니다.

이들의 심리를 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지나친 자신감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는 본전심리입니다. 지금까지 들인 노력이 아까워 포기하지 못하고 운 좋게 나무가 쓰러지기를 바라면서 계속 도끼를 휘두르는 것이죠. 세 번째, 사실은 겁나는 것을 억누르기 위해 도끼를 휘두르며 앞장서 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역공포 반응'이라 하죠. 이들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감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심리가 기저에 있다 보니 나무가 꿈쩍도 않고, 힘은 들어도 도끼질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들의 오기어린 낙관주의에는 대책이 없습니다. '도끼병'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낄 때와 뺄 때를 아는 능력, 내 도끼의 세기와 벨 나무의 강도를 적절히 평가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다섯 번 찍어봤는데 이도 안 들어갔다면 다른 나무를 찾아야지 그러다가 도끼를 부러뜨리거나 성질만 더러워집니다.

사랑도 '도끼병'에 걸립니다. 한 번 호감 가는 표적을 포착하면 아무리 상대가 거절해도 끝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꽃이나 선물 보내기 등 다양한 이벤트를 벌입니다. 오가는 동선을 조사해 기다리거나 규칙적으로 이메일·문자 메시지를 보내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그리고 주변에 '언젠가는 넘어올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합니다. 모든 것을 사랑의 이름으로 합리화합니다.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이 병은 최근 들어 TV드라마나 '짝짓기' 버라이어티 쇼 등의 영향을 받아 급격히 퍼져나가고 있답니다. '도끼병' 걸린 사랑은 나중에 상처 받은 자존심을 보상 받으려는 오기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커터 칼로 나무를 백 번 베어봤자 껍질에 흠집도 안 납니다. 자기 이름이나 새겨 넣으면 성공입니다. 나무인 줄 알고 달려들었는데 알고 보니 콘크리트 전봇대인 경우도 있지요. 도끼병은 역경과 고난을 뛰어넘는 사랑, 혹은 불굴의 의지란 미명하에 소나무 재선충병처럼 확산일로에 있어, 피해자들의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역병인 도끼병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