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병마를 딛고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서양화가 이정은씨.

24일부터 31일까지 경북대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제2회 이정은 개인전'의 주인공인 서양화가 이정은(李定恩·여·60)씨.

태어 났을 때부터 40대 초반까지 그는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린 오른손잡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왼손잡이다. 40대를 지나칠 무렵 갑자기 찾아온 병마(病魔)로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왼손잡이 화가로 변신, 그만의 감성을 화폭에다 펼치고 있다.

경북여고와 이화여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씨는 대학 졸업과 함께 잠시 화가로서의 꿈을 미뤄야 했다. 결혼과 육아 때문이었다. 당시 부산에서 대기업 직원으로 근무하던 남편과 함께 부산에 살면서 8년간 붓을 놓고 가사에만 전념했다. 그러다 두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서 이씨는 다시 붓을 잡았다. 1985년에는 부산미술대전에 참가, 특선을 차지하기도 하는 등 화가로서의 역량을 펼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43살이 되던해 갑작스럽게 심장판막에 의한 중풍이 찾아왔다. 온몸이 마비된채 종합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병원에서는 "생존가능성이 0%"라는 진단을 내렸다.

낙담한 남편 서경언(徐景彦·66)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알고 지내던 한의사에게 침을 놔달라고 했다. 3주만에 이씨의 말문이 터졌고,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고 몸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중풍은 끝내 이씨에게는 오른손 마비라는 후유증을 남겼다.

이씨가 쓰러진지 1년반만에 남편 서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 이씨와 함께 고향인 대구로 돌아와 주유소를 경영했고, 이씨는 자신의 천분이라고 여겼던 그림그리기에 다시 도전했다.

왼손의 감각을 오른손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3시간 이상씩 연필로 선을 긋고, 붓으로 색을 칠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아들에게 연필을 10자루 이상씩 미리 깎아 놓게 하기도 했다.

"마음 먹은 대로 그림이 안 나오더라도 크게 괘념치 않았습니다. 이 정도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고 생각했습니다."

얼마후 대구대 평생교육원에서 1년반 다시 그림공부를 통해 그림에 대한 공력을 다졌다. 이씨는 거기서 스승으로 만난 김상용 화백의 화실을 작업실로 쓰면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후 이씨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을 비롯 신라미술대전과 경북미술대전 입선 등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기쁨도 누렸다. 이어 지난 2002년 대구은행 갤러리에서 누드 드로잉 개인전을 열었다. 이어 두번째 개인전을 준비한 것.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씨가 쓰러지기전 제작한 유화를 비롯 왼손으로 제작한 유화와 수채화 등 3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래서 한 화가가 오른손과 왼손으로 제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온전치 못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연세가 91세인 시모를 모시고 살고 있는 이씨는 "이번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개인전은 안하려고 한다. 지금부터 그리는 그림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