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에너지를 원하거든 이들 3개사에 물어봐라.'

세계 최대 가스사 가즈프롬을 주축으로 러시아 최대 국영 석유사 로스네프트, 송유·가스관 건설 독점사 트란스네프트가 강력히 연대하면서, 러시아 유전·가스전에 투자했거나 투자 예정인 외국 에너지 기업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12일 독일을 방문,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바렌츠해(海) 소재 러시아 슈토크만 가스전에서 채굴한 가스를 독일에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슈토크만 가스전은 3조2000억㎥ 규모의 천연가스 매장지로 2010년 채굴을 시작해 애초 50년 동안 미국에 공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가스 공급 대상이었던 미국을 독일로 바꾸겠다는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이에 앞서, 알렉세이 밀러 가즈프롬 회장은 슈토크만 가스전을 단독 개발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 역시 원래 지난해 9월 셰브론과 코노코필립스 등 미국 기업이 가즈프롬 협력사로 선정돼 슈토크만 가스전 개발에 나설 예정이었다. 미국으로선 거대 가즈프롬의 '일방적인' 결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꼴이 됐다.

그 이전에 러시아는 또 지난달 18일 영국과 네덜란드 합작사인 로열더치셸이 주도하고 있는 사할린-2 공구 가스전 개발의 '환경승인'을 철회해 사업을 중단시킨 바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자국 에너지를 외국 기업에 쉽게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한다.

로스네프트의 기업공개(IPO) 역시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로스네프트는 지난 7월 영국과 러시아에서 동시에 실시한 IPO에서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가 20억달러의 주식 지분 인수를 시도하자 저지했다. 외국 에너지사의 과도한 지분 확보를 막겠다는 것이다. 각국은 국영기업인 로스네프트의 지분을 인수하면 러시아 진출이 쉬워지리라는 계산하에 로스네프트 주식 확보에 혈안이 됐었다. 이 회사는 1993년 허름한 유전관리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하루 150만배럴의 석유를 생산한다. 조만간 러시아 업계 1위로 도약할 전망이다.

트란스네프트는 총 4만7000㎞에 이르는 파이프라인을 보유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트란스네프트 없는 가즈프롬과 로스네프트는 실제로 아무 의미가 없다. 두 에너지사가 보유하고 있는 가스전과 유전이 대부분 시베리아에 몰려 있어 파이프라인 건설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트란스네프트는 영국 BP와 러시아 석유사 TNK의 합작사인 BP·TNK가 생산·채굴권을 갖고 있는 이르쿠츠크 코빅딘스크 가스전을 사면초가에 몰아넣었다. BP·TNK는 가스 생산 시설을 완비하고도 트란스네프트가 가스관 건설에 협조하지 않는 바람에, 지난 4년 동안 가스 공급을 못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