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수 현대중공업 문화부 차장

주말이면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태화강 둔치로 향한다. 간편한 운동복 차림에 축구공 하나만 있으면 된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와 태화강은 겨우 반 마장 거리다. '마실 나간다'는 말처럼 부담없이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잔디밭에서 축구를 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녀석은 아버지와 잔디밭에서 뒹구는 걸 좋아한다. 딸아이도 덩달아 부자간의 게임에 끼어든다. 축구가 지겨워질 때쯤 강둑을 거슬러 걷는다. 깔끔하게 조성된 산책로에는 조깅을 하는 사람,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이 물결처럼 흘러가고 테니스장과 농구장엔 함성이 가득하다. 다리 밑 공터는 배드민턴이나 족구를 즐기는 가족과 동호회원들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엔 낚시꾼까지 부쩍 늘었다. 꼬시래기가 제철이라나……. 동해 미포 앞바다에서 예전만을 거쳐 태화강까지 거슬러온다고 한다. 새우를 미끼로 낚싯대를 담그자 어른 손가락만한 꼬시래기가 쉴새 없이 올라온다. 아이들은 신기한 모양이다. 넋을 놓고 앉아 유별난 낚시를 감상하면서 이 낯선 물고기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공부가 뭐 별건가, 자연을 느끼고 체득하는 게 좋은 선생님이자 산 공부 아닌가.

10년 전만 해도 울산, 특히 태화강을 중심으로 한 도심지역은 악취와 매연, 하천 오염 때문에 주거 환경으로는 낙제점이라 했었다. 지금은 대기가 맑아지고 강이 살아나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자연이 살아 숨쉬는 도심으로 바뀌었다. 태화강엔 회유 어종인 연어가 돌아오고 숭어, 장어도 철을 맞춰 찾아온다. 둔치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질 것 같은 풍경들이 펼쳐지고 거기에 시민들이 함께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

올해로 울산에 정착한 지 만 16년째다. 대구에서 이불 보따리 하나 달랑 안고 왔다. 울산의 첫인상은 황량했다. 공해도시라는 선입견까지 겹쳐 마음이 어지러울 때 울산이란 도시는 음산하기까지 했다. 주말이나 휴가 때면 부산으로 대구로 경주로 떠났다가 휴일의 마지막 날까지 꽉꽉 채우고 마지못해 울산행 버스에 오르곤 했다. '울산에 올 때 떠날 생각부터 먼저 한다'는 것은 필자 혼자만이 아니라 타지에서 온 직장 선배와 동료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흘러온 타지 사람이 다 그러하듯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울산은 자의 반 타의 반 '제2의 고향'이 되어 갔다.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라는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모두들 그렇게 위안을 삼고 산 셈이었다.

그리고 16년 후, 울산의 변화된 모습은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한다. 새벽에 문을 열었을 때 밤새 소리 없이 내린 눈이 새하얗게 쌓인 광경에 비유하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문화 예술 공간을 짓고 공원을 조성하고 꽃을 심고 나무를 가꾸고 물을 깨끗이 하는 일들, 그리고 딱딱한 아파트를 자연과 어우르게 만드는 일들이 그렇다. 어느새 울산은 '제법 살만한 도시'로 바뀌고 있다.

요즘엔 '공해도시'란 굴레에 가렸던 울산의 진면목도 다시 보인다. 일산, 주전, 정자로 이어지는 때묻지 않은 해변과 장엄하고 아기자기한 연봉(連峰)의 '영남알프스'라는 천혜의 자연 환경. 선사시대의 울산 혼이 서린 천전리와 반구대, 울산을 국내 최대의 공업도시, 세계를 주도하는 조선·자동차 산업으로 계승시킨 달천 철장의 쇠부리 정신 등…….

울산은 천혜의 자연환경, 면면한 역사의 숨결, 역동적인 산업현장이 조화롭게 어울러진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나의 아들 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울산을 만드는 것이 나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조용수 현대중공업 문화부 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