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지휘자 마리스 얀손스), 러시아의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일본의 NHK 교향악단(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까지 각국의 방송 교향악단은 그 나라의 공영 방송이 추구하고 있는 문화적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오는 21·22일 내한하는 영국의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자 이리 벨로흘라베크) 역시 세계에서 손 꼽히는 1급 교향악단. 하지만 역설적으로 영국에선 수많은 방송 교향악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 BBC 웨일스 국립 오케스트라, BBC 필하모닉, BBC 스코티시 심포니, BBC 심포니 등 'BBC'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활동하는 오케스트라만 5곳에 이른다.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 등으로 고집스럽게 나뉘어 월드컵에 출전하는 영국의 대표팀들처럼, BBC의 오케스트라가 많은 것도 영국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관련이 깊다.
'BBC NOW'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BBC 웨일스 국립 오케스트라의 근거지는 웨일스 남단의 카디프다. BBC 필하모닉은 1920년대 맨체스터 지역 라디오 방송국의 호출 부호인 '2ZY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BBC가 합창단 두 곳을 포함해 매년 이들 연주 단체에 투자하는 돈은 1900만 파운드(338억여원). KBS 교향악단이 쓰는 한 해 예산(80여억원)의 4배에 이른다.
진정 부러워해야 할 건 영국 방송 오케스트라의 숫자나 예산이 아니라 '활용도'다. 이들 오케스트라는 각 지역을 중심으로 연주 활동을 하면서도 BBC의 라디오와 TV 네트워크를 통해 끊임 없이 실황 공연과 녹음을 방송한다. 피에르 불레즈, 엘리어트 카터, 존 애덤스 등 현대 작곡가에게 작품을 의뢰하고 초연하는 것도 이들 방송 교향악단의 역할이다.
또 BBC 오케스트라들의 콘서트와 연주 활동은 역시 BBC가 운영하는 클래식 잡지인 'BBC 뮤직 매거진'을 통해 세계로 전파된다. 'BBC 브랜드'를 내걸고 활동하는 오케스트라의 인지도가 올라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한국의 방송 교향악단이 처해있는 상황은 정반대다. 전(前) 상임 지휘자인 드미트리 키타옌코(러시아)의 임기가 끝난 뒤, KBS 교향악단은 1년 10개월째 '오케스트라의 선장'인 상임 지휘자 자리를 공석(空席)으로 비워놓고 있다. KBS가 추진중이던 오케스트라 법인화도 KBS 후임 사장 선정 문제가 표류하면서 뚜렷한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종영된 KBS의 인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2악장이 흘러나왔지만, 정작 KBS는 사운드트랙 발매는커녕 다른 악단의 연주를 방송에 사용하는 무신경을 드러냈다.
영국 BBC 심포니 홍보 담당자인 빅토리아 비반은 서면 인터뷰에서 "BBC는 정보·교육·오락 등 각종 문화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오케스트라를 그 중심에 놓고 있다"고 말했다. BBC 심포니의 내한 공연을 가장 앞좌석에서 지켜봐야 할 분들은 어쩌면 KBS 운영진이 아닐까. ▶21일 낮 5시 성남아트센터(031-783-8000), 22일 낮 2시30분 예술의전당(02-751-9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