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는 귀에만 닿는 게 아니라 피부에도 스며든다.
모파상의 내부에서 흘러 나오는 목소리는 모여든 사람들을 침묵시켰다. 리진은 그 목소리를 감상하며 가만 눈을 감았다. 맑고 담담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자신의 창작물이어서일까. 모파상의 목소리 속에 잔느의 일생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했다. 리진은 모파상의 육성이 이마와 빰, 팔에 미끄러져 내리는 듯이 느껴졌다. 모파상은 첫 장면부터 계속 낭독하는 것이 아니라 짤막한 설명을 곁들여 가며 대목대목들을 낭독했다. 그렇게 다섯 대목쯤 지나갔을 때다. 모파상이 갑자기 낭독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청중들을 바라보았다.
―목이 아프군요.
모파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꼼짝없이 서 있던 사람들이 슬며시 자세를 풀며 목이 아프다고 말하고 있는 책상 앞의 모파상을 주시했다. 리진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콜랭도 기지개라도 펴고 싶은지 손을 거두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목이 아프기도 할 것이다. 낭독이 시작된 지 벌써 오십여 분이 지났다.
―여러분들 중의 한 분이 낭독을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모파상의 갑작스런 제의에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들을 쳐다보았다. 맞은편 아치 기둥 사이에서 플라사르 부인이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여기에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온 마담이 한 분 있습니다.
조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다가 곧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리진을 향했다.
―여기 말을 잘하세요. 그분이 낭독을 해주시면 어떨까요?
리진은 화들짝 놀라서 플라사르 부인을 쳐다보았다. 플라사르 부인은 리진을 향해 다정히 미소 지었다. 리진이 플라사르 부인에게서 모파상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리진을 바라보고 있던 모파상과 시선이 마주쳤다. 모파상이 로이드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저도 마드모아젤이 낭독하는 소리를 듣고 싶군요!
리진은 콜랭을 보았다. 놀라기는 콜랭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콜랭은 흐름을 파악한 듯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오, 리진에게 속삭였다. 당신이라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소! 망설이는 리진을 콜랭이 부추기기까지 했다.
리진은 물위를 걸어가는 듯한 기분으로 중앙으로 걸어갔다. 모파상이 일어나 리진에게 의자를 내주고 바로 옆에 섰다. 플라사르씨가 앞으로 나와 낭독회가 시작될 때 모파상을 소개할 때처럼 리진을 소개했다.
―머나먼 나라 조선에서 온 분입니다. 그곳에서 최고의 궁중 무희였다고 합니다. 외무성 동양담당 전권위원 콜랭 씨의 부인이신 리진씨!
궁중 무희였다는 플라사르씨의 소개에 주변은 다시 술렁였다. 모파상은 어디를 낭독할 것인지를 미리 정해온 듯했다. 낭독할 페이지마다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다. 모파상이 다음 낭독할 부분으로 잔느가 아기를 출산하는 장면을 손으로 짚어주었다. 리진은 책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바로 앉았다.
―잔느의 몸 속에 환희가 스쳐 지나갔다. 바야흐로 새로운 행보를 향한 약진이었다.
웅성거리던 독서실 안은 한순간 물속처럼 조용해졌다. 나라이름조차도 처음 듣는 조선에서 왔다는 검은 눈을 가진 여인이 조금도 더듬거리지 않고 불어로 된 소설을 낭독하기 시작하자, 모두들 놀란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잔느는 해방되었고 안정을 되찾았으며 행복을 느꼈다. 일찍이 느껴 보지 못한 그런 행복감이었다. 마음도 육체도 마침내 생기를 되찾았다. 그녀는 어머니가 된 자신을 깨달았다.
리진은 어느새 침착하게 낭독하는 일에 집중했다.
―아기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아기는 너무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머리카락도 없고 손톱도 없었다. 아기가 애벌레처럼 꿈틀거릴 때, 입을 벌리고 울기 시작할 때, 주름투성이 얼굴을 찌푸릴 때, 달도 채우지 않고 태어난 작은 몸을 만졌을 때, 잔느는 저항할 수 없는 환희에 휩쓸렸다. 줄리앙의 배신으로 죽은 것 같았던 자신이 되살아났음을 깨달았다. 온갖 절망에서 헤쳐 나왔으며,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사랑을 얻게 되었음을 받아들였다.
차분하던 리진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떨렸다. 리진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자, 눈을 감은 채 낭독에 귀 기울이고 있던 모파상이 슬며시 눈을 뜨고 리진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