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근만

"저희가 마치 교육부를 상대로 엄청난 로비를 한 것 같습니다."

최근 만난 학원 관계자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광풍(狂風)이라 불릴 정도로 논술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현상을 빗댄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학원들 사이에선 이때 돈 못 벌면 바보란 얘기마저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입시제도를 바꿀 때마다 '공교육 강화 및 사교육비 축소'를 내세웠다. 교육부는 2008년 대학입시 제도 개선을 발표하면서도 내신 비중을 강화해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교육 당국은 대학들의 팔을 비틀어 2008년 입시에서 학교 내신 50% 반영이란 성과를 끌어냈다. 하지만 이는 교육 당국 입맛에 맞춰주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대학 입시를 좌우하는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들은 내신 50%를 제외한 나머지 50%에서 논술의 반영비율을 일제히 높였다. 각 주요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내신 성적 수준이 대체로 큰 차이 없이 일정하다고 보면 사실상 논술이 당락을 결정짓게 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사교육 현장은 요동을 칠 수밖에 없다. 수년 전부터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독서·토론·논술 붐이 일더니 급기야는 3~7세 유아들까지 논술 광풍에 끌려가고 있다. '논술 내용이 어려워야 장사 잘 된다'거나 '학부모들을 기다리게 해야 소문난다'는 등 학원들의 얄팍한 상술이 학부모들의 '논술 불안감'을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초·중학생도 잘 모를 난해한 주제를 유아에게 가르치는 기이한 현상이 이 세상 어느 나라에서 또 벌어질까.

논술은 하나의 과목이 아닌데도 학부모와 학생들은 마치 국·영·수 이외에 과외 과목 하나 더 추가하듯 사교육시장으로 몰려가고 있다. 학교들은 애를 써보지만 역부족이다.

어디 이뿐인가. 학생, 학부모 입장에서는 논술 과외 이외에 수능 과외, 내신 과외에도 매달려야 한다. 논술이 당락을 좌우한다지만 어쨌거나 내신 비중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를 외면할 수도 없다. 수능이 점수제에서 9등급제로 바뀌어 변별력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무시할 수 없다. 수시2학기 모집에서 대학들이 제시한 최저 학력 기준을 넘어야 하고 정시모집에선 1개 등급이라도 더 좋게 받아야 한다. 교육 당국은 한때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어느 하나만 잘한다고 해서 대학에 들어간다는 보장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죽어나는 것은 학부모, 학생이다.

교육 당국은 교육 현장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3불정책(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의 덫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다. 사석에서는 "현 정부와 코드가 안 맞아 일 못하겠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교육 관료들이 일부 있긴 하지만 마치 헌법처럼 돼버린 '3불정책'을 감히 손대기엔 관료들은 너무 왜소하고 무력할 뿐이다.

이렇다 보니 차라리 본고사를 허용하는 편이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교육 당국은 과연 본고사를 허용했을 경우 지금보다 사교육비가 더 들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한 대학 관계자는 "학교에서 대처할 수 있는 본고사가 사교육에만 의존하다시피 하는 지금의 논술고사보다는 더 공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비록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교육 당국은 정작 자신들이 사교육을 키워주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되짚어 봤으면 한다.

(양근만·교육팀장 yangk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