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을 다룬 책들이 많지만, 이처럼 '유별난' 그림책은 처음이다. 우선 책의 형식이 고서(古書)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나가게 돼 있다. 그리고 세로쓰기다. 문체는 입말을 그대로 살린 구어체. 자녀를 무릎에 앉혀 놓고 옛이야기 들려주듯 읽어주라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적서(嫡庶)의 신분 차이 타파와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려는 원저자 허균의 사상이 녹아 있으되, 아이들은 마치 애니메이션이라도 보듯 흥미진진하게 그림책 속으로 빠져든다. 한지에 먹과 채색을 조화시킨 그림은 이 책의 격을 한층 높인다. 겸재 정선의 산수화에 나올 듯한 수려한 산골짜기를 맨발인 채 훌훌 뛰어다니는 길동이, 머리가 땅바닥에 닿도록 임금에게 아첨하는 대신들의 모습 등 오방색을 바탕으로 한 민화에 만화식 과장과 희화성을 접목시킨 그림만 봐도 충분히 즐겁다.
재일조선인 2세인 작가는 일본에 사는 교포 청소년들을 위해 1982년 이 그림책을 처음 펴냈다. 그로부터 24년의 세월이 흐른 뒤 한국에서 재출간됐지만, 세월의 간극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세련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