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과 수사의 본질적인 문제를 놓고 법조계 내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검찰과 변호사를 비하하는 듯한 이용훈(李容勳) 대법원장의 발언으로 빚어진 파문이 일파만파를 낳고 있다. 논쟁은, 일선 판사와 검사, 변호사들이 뛰어들면서 총론 수준을 벗어나 각 분야별 이슈를 중심으로 한 난타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검사 조서 믿을 수 없다""수사기록은 검사의 땀과 혼이 밴 작품"
1."공판 중심주의 제대로 해야 국민으로부터 신뢰 받는다.검사가 조사한 수사기록 던져버리라"(9월 19일 대전순시)
①공판 중심주의가 논란의 핵심
22일 법조브로커 김홍수씨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세관직원에 대해 법원이 선고유예 판결을 했다. "(검찰이 조사한) 김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밀실에서 만들어진 검사 조서를 어떻게 공판보다 우위에 두느냐. 던져버리라"는 이 대법원장의 발언이 나온 지 3일 만이다. 조서의 신빙성 논쟁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박용석 대전고검 차장검사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수사기록은 함부로 내던지는 물건이 아니다"라며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
그는 "수사기록은 검사의 땀과 혼이 밴 작품"이라며 "오랜 수사와 재판의 경험에 비춰보면 법정 진술보다는 수사기록이 더 진실을 담은 경우가 허다하다"고 반박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진술은 마치 성당의 고해성사와 같아서 공개된 법정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출신의 박준선 변호사는 "조서를 던져버리라는 대법원장의 발언은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할 권리가 있는 개별 판사의 재판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오히려 판사들이 반발해야 정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판사들은 적극적으로 대법원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경기도 고양지원의 정진경 부장판사는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갖고 있는 한 공익의 대변자가 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사법부 위상 말한 교과서 말씀""법조 3輪부정하는 말"
2."사법의 중추기관은 법원이고 검찰·변호사회는 보조기관들이지 무슨 같은 바퀴냐"(9월 13일 광주고법)
②'법조 3륜'의 위상 논란
법원·검찰·변호사를, 사법시스템을 함께 이끌고 가는 3대 파트너로 간주하는, 이른바 '법조3륜(輪)'을 부정하는 말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법원이건 검찰이건 모두 국민에게 봉사하는 입장에 있지 서로 간에 우열관계를 논할 성질의 관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용석 변호사는 "평소에 법원이 최고의 엘리트라는 왜곡된 의식이 발언에 녹아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의식을 가진 사람이 사법부 수장을 계속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대법원장을 맞은 각 법원의 분위기가 마치 '종교 부흥회'와 같은 열띤 분위기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법원을 높이고 검찰·변호사를 깎아내려 내부 결속을 다지는 모습에서 '열혈 민족주의자'가 연상된다"고 말했다.
대법원측은 "입법·행정부와 동급인 사법부의 위상을 말한 교과서적 말씀"이라며 "3부 요인인 대법원장의 예우도 행정부 관료인 검찰총장이나 이해단체 대표인 변협 회장과 단순 비교가 어렵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도 법원이 맨 처음 생겼고, 이후 법원을 보조하는 차원에서 변호사와 검찰 조직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위증 유도하는 변호사도 있다""변호사 했던 李대법원장도 포함되나"
3."변호사들이 만든 서류는 대개 사람 속여 먹으려고 말로 장난치는 것이 대부분. 그것 가지고 재판하면 잘못"(9월 13일 광주순시)
③변호사 서류 속임수 논란
이용훈 대법원장은 "변호사들이 만든 서류는 대개 사람 속여 먹으려고 말로 장난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 가지고 재판하면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대해 변호사 업계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날 서울변호사회 창립 99주년 기념식에 장윤기 법원행정처장이 참석해 "비하할 뜻은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변호사들의 반응은 썰렁했다.
하창우 대한변협 공보이사는 "그렇다면 변호사를 5년이나 하신 이 대법원장도 포함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만약에 이 대법원장도 그런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당연히 사퇴를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변호사들은 이날 "이 대법원장이 5년간 변호사 활동을 하며 60억원을 벌지 않았느냐"는 폭로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의 한 판사는 "대법관과 변호사를 다 해보신 분의 말씀이니 그런 일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변호사가 위증이나 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되는 경우가 많으냐"는 질문에는 "매우 드물다"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