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나눠 하나가 된 사람들.'
소중한 인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장기를 기증한 사람들과 이식받은 사람들. 나눠서 기쁘고, 받아서 행복한 사람들이다. 부자(父子) 기증인, 부부(夫婦) 기증인, 최연소 장기 이식인, 뇌사 상태에 있는 가족의 장기를 타인에게 선물한 유가족….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삶'을 주고받은 150여명이 감격스럽게 만났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제10회 장기기증인의 날'을 맞아 마련한 자리다.
8일 오후 5시 경기도 양평 한화리조트. "형님, 우리 너무 자주 보는 것 아니에요?" 기증자 박규식(60)씨가 91년 자신의 신장을 이식받은 박원준(62)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둘은 운동본부 명단에 있는 최장수 이식팀이다. "우리 동상 여기 있었구먼. 별일 없지?" 기증자에 대한 고마움이 우정으로 바뀐 지 오래. 이제 둘은 좋은 일, 힘든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가족이 됐다.
칠십 노인 노명환(70)씨. 11년째 신장 하나로 산다. 아들 노성철(40)씨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보다 2개월 먼저 신장 하나를 떼냈다고 했다. "92년에 우리 가족 모두 시신 장기기증 등록은 했었죠. 어차피 죽는 거라면 죽어서라도 좋은 일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갑자기 지금 할 수 있는 봉사부터 시작하자는 겁니다."
장가도 가지 않은 스물아홉 아들이 '진짜로' 신장 기증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아버지는 겁부터 났다. 아들은 담담히 수술대에 올랐고, 아버지는 아들의 수술을 지켜봤다. "대견하고 고마웠습니다. 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이들은 부자 기증인이 되었다.
부창부수(夫唱婦隨). 부부 장기기증인들도 이 자리에 있었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양로원을 운영하는 김근묵(56), 이경희(55) 부부. 6년 전 회사를 그만두면서 받은 퇴직금과 자택을 팔아 마련한 2억여원으로 사설 양로원을 열었다.
"제가 월남전 참전용사입니다. 71년 훈련 중에 가슴을 다쳐 의무대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피 흘리며 아파하는 사람들을 지켜봤죠. 그때 이 몸 다할 때까지 남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김씨는 보름이 멀다 하고 헌혈을 하고, 월급을 쪼개 양로원과 고아원을 도왔다. 91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 유공장 '금장'도 받았다. 그리고 95년 한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 신장을 떼어 기증하고, 7년 뒤 자신의 간 일부도 조건 없이 기부했다. 결혼 전부터 불우이웃 돕기라면 두 팔 걷고 나선 남편을 따라 아내도 96년 장기 기증에 동참했다. "우리 남편은 항상 다 가지는 건 사치라고 말해요. 이젠 저도 그 말이 맞는다는 걸 알고요."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 근묵씨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97년부터 매년 9월 첫째 주를 '장기주간'으로 정하고 장기기증 캠페인을 펼쳐오고 있다. 올해가 10주년.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나눔의 소중함'을 안다. 운동본부 이사장 한정남(62)씨는 "장기기증은 타인에게 또 다른 새로운 삶을 선물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94년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딸의 시신을 이화여대에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