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보다, 내가 '뽀샵'(포토샵)을 더 잘 한다우~."
경기도 안산 '노인 디지털 클럽'인 '은빛 둥지'. 전국에서 컴퓨터 제일 잘하는 노인들로 꼽힐 만큼 디지털 기술에 밝은 이들의 평균 연령은 70세다. 인터넷부터 MS 오피스 활용, 홈페이지 제작에 플래시까지 노인들의 컴퓨터 실력은 젊은이를 능가한다.
이 백발 성성한 IT 전문가 모임 속에 또 하나의 클럽이 생겼다. 지난 5월 은빛둥지 회원 30여명이 꾸린 '1000인의 영정봉사단'.
디지털카메라와 포토샵(그래픽 편집 프로그램) 실력을 갈고 닦아 또래 노인들의 '영정(影幀)'을 찍어주겠다는 취지다. 일단 내년 말까지 어려운 노인 1000명에게 봉사한다는 목표로 열심히 찍고, 클릭하는 중이다. 본격적인 사진 봉사를 시작한 지난 8월부터 지금까지 총 100여명의 노인이 은빛둥지에서 영정 사진을 마련했다.
안산 본오동 713번지 은빛둥지 사무실이 있는 본오경로당 건물 옥상. 이곳 3평 남짓한 물탱크실에 들어가면 바로 '1000인의 영정봉사단'이 쓰는 스튜디오가 펼쳐진다. 시멘트 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버려진 공간을 노인들은 사진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사진 전문가들에게 빌려온 라이터 두 개에 쓸만한 우산을 꽂아 만든 조명시설, 고물상에서 주워온 구식 컴퓨터와 플라스틱 의자…. 스튜디오의 '필요조건'만 겨우 갖춘 공간이지만, 이들은 이 곳에서 유명 스튜디오 못지 않은 사진을 만들어낸다.
"좀 허름하죠? 그래도 할 건 다 해요. 사진관보다 더 잘 나온다니까." 임호순(70) 할아버지가 디지털 수동 카메라로 찍어 액자에 끼운 사진들을 보여줬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할머니의 얼굴이 뽀얗게 빛난다.
"자기는 가지만, 후손에게 좋은 인상 남겨줘야 되잖아요." 정원필(76) 할아버지는 "한 사람 한 사람 최선을 다해서 찍기 때문에 한 사람 당 2~3컷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힘 없이 처진 노인들의 어깨를 바로 잡아주고, 굳어 있는 표정을 환하게 살리기 위해 3컷도 모자라 7컷, 8컷을 찍기도 한다. 찍은 파일은 즉석에서 컴퓨터로 확인해 보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는다.
사진만 찍어주는 게 아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직접 모셔오기도 하고, 출장 나가 찍어드리기도 한다. 할머니들 화장은 기본, 찍고 난 뒤 '포토샵 수정'까지 고객이 원하는 모습이 나올 때까지 정성을 다한다. "안 예쁜 사람도 예쁘게, 예쁜 사람은 더 예쁘게 해줘야지. 가는 길 후손하고 인사하는 사진인데…" 메이크업 봉사를 하고 있는 박영순(78) 할머니는 "눈썹은 진하게, 립스틱은 너무 빨갛지 않게, 화장은 번들거리지 않게 해야 한다"며 사진발 잘 받는 화장 노하우도 살짝 들려줬다.
영정사진은 자식이 먼저 해주겠다고 나서기에도 어색하고 부모가 먼저 해달라고 하기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은 찍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노인들이 말 못하는 사정을 노인들이 풀어줘야지, 누가 알겠소." 은빛둥지 라영수(67) 원장은 "보통 영정사진 찍으려면 5만원 이상 들고, 주민등록증 사진 확대하는데만 30만원이 든다"며 영정사진 봉사는 노인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영정사진 찍는 날은 매주 수요일. 전화로 신청만 하면 정성이 담긴 영정을 무료로 마련할 수 있다. ☎(031)438-40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