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꿈꾸는 사람에게 나이와 직업은 장벽이 되지 못했다.
일흔을 바라보는 재벌그룹 명예회장과 열아홉 대학 새내기, F-5 전투기 조종사와 11년 경력의 스튜어디스가 출발선에 함께 섰다.
'한국 우주인 1호'. 이 꿈을 향한 긴 관문이 2일 오후 5시 서울을 포함한 전국 6개 도시에서 시작됐다. 우주인의 하드웨어를 재는 첫 번째 테스트는 3.5㎞를 20여 분(남자 23분 여자 28분) 안에 달리는 것. 3만6000명의 신청자 가운데 서류 심사를 통과한 3323명이 이 달리기에 참가했다.
우주인을 꿈꾸며 이날 달렸던 사람들은 가슴속에 우주의 모습을 제 각각 품었다.
합격 커트라인 30초 전에 결승선을 통과한 최연소 참가자 백장미(여·19·한양대 자연과학부 1년)씨. 배번호 2번을 달고 뛴 그는 고등학교 때 과학탐사반에서 활동하면서 우주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천체 망원경으로 본 토성은 정말 아름다웠죠. 우주인이 되면 좁은 망원경 대신 제 눈으로 지구와 달을 보고 싶어요. 모두 디카(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올 거예요"
112전투비행대대 소속 F-5 전투기 조종사인 전상우(28) 대위는 우주인 선발 프로그램에 지원하면서 어린 시절 봤던 영화 '스타워즈'를 떠올렸다. "그 영화에 나오는 우주선 비행장면을 보고 소름이 돋았어요. 너무 멋져 보였죠. 그때부터 우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대기권 밖에서 지구를 보는 게 꿈인 그는 비행이 없는 날이면 가끔 인터넷으로 우주에서 본 지구사진을 찾아 보곤 한다. "보통 임무 수행을 위해 고도 2만8000~3만 피트(8.5~9.1㎞)를 비행하는데 더 높은 곳에서 보는 지구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11년 경력의 대한항공 승무원 안소현(여·32)씨는 자신의 직업이 우주인과 가깝다고 했다. "제가 하는 일이 늘 하늘에 떠 있는 것이니 우주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안씨는 "34개 나라에서 우주인이 나왔지만 여자 우주인이 '최초 우주인'이었던 나라는 아직 없다"며 여성으로서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되고 싶은 희망을 밝혔다.
달리기를 마치고 풀밭에 앉아 쉬고 있던 변호사 박용익(60)씨는 "1980년대 초반 미국 연수시절에 미 항공우주국(NASA)과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을 방문하면서 우주인의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세계 7개 대륙 최고봉과 남·북극점을 정복한 산악인 박영석(43)씨에게 우주는 새로운 도전 대상이다.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나니 주위에서 '이제 남은 것은 우주뿐이니까 한번 나가라'고 권유했어요."
배번호 1번을 달고 뛴 정재은(67)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은 "우주인이 돼서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보려고 지원했다"고 말했다. 젊은 지원자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그동안 잠실, 여의도, 일산, 하와이에서 시간을 재가며 실전처럼 달리기 연습을 했다. 그는 "젊은이들은 기회가 많겠지만 나에게는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라며 "우주정거장이 어떤 구조인지 꼭 내 눈으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정 명예회장은 3.5㎞를 18분 32초에 통과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우주인의 꿈을 꾸고 있지만, 격한 경쟁은 숙명이다. 2008년 4월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에 최종 탑승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기 때문이다. 당장 9월 17일에 영어(TEPS)와 종합상식 시험을 치르고, 공군항공우주의료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 10월 중순 확정될 1차 합격자 300명 안에 들면 올해 말까지 우주 상황 적응 평가 등 4차례에 걸친 테스트를 다시 치른다. 이 '바늘구멍'을 통과한 2명의 후보자는 러시아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다시 1년 동안 훈련을 받고, 이 중 한 명만 영광의 우주복을 입는다.
최기혁 우주인사업단장은 "우주인이 되려면 체력뿐만 아니라 팀워크와 지적 능력 등 지덕체(智德體)를 모두 갖춰야 한다"며 "다른 나라 우주인은 공군 조종사 출신이나 박사급 연구자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뽑는 만큼 의외의 사람이 우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3일 "1차 기초 체력평가에서 지원자 3323명 가운데 3176명이 합격했다"고 밝혔다. 합격률 95.5%. 이 비율은 올해 말에는 0.06%, 내년에는 0.03%로 수직하강하며 무수히 많은 우주인 지망생들을 떨어뜨릴 것이다.
하지만 이건 숫자일 뿐이다. 어차피 그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우주는 탈락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