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종합영어’ 저자 송성문씨가 2003년 평생 모은 국보 4점과 보물 22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거기엔 원형을 간직한 것으론 가장 오래됐다는 대장경, 한석봉 서첩(書帖) 같은 문화재에 운보 김기창 동해일출도(東海日出圖)도 있었다. 성문종합영어, 옛 정통종합영어는 1967년 첫 판이 나온 뒤 학원가와 과외시장을 석권했던 참고서다. 송씨는 참고서 팔아 번 돈을 고문서 수집에 쏟아 부었고 그렇게 모아 국가에 기증했다.

▶성문종합영어와 함께 고교 참고서의 양대 산맥을 이룬 게 상산학원 홍성대 이사장의 ‘수학의 정석’이다. 그 수학의 정석이 내일 발행 40주년을 맞는다. 수학의 정석은 지금까지 판매부수가 3700만권에 달한다. 누적 두께를 계산해봤더니 에베레스트 125개 높이라고 한다. 요즘도 한해 100만권 넘게 팔리고 있다. 할아버지가 보던 참고서를 손자도 보고 있는 셈이다.

▶홍 이사장은 44세이던 1981년에 전주 효자동에 상산고(象山高)를 세웠다. 학생들 덕분에 번 돈이니 학생들을 위해 쓰겠다는 생각이었다. 상산고는 2003년 자립형사립고가 됐다. 홍 이사장이 지금까지 상산고에 쏟아넣은 돈은 1000억원쯤 될 거라고 한다. 지난해에도 110억원을 들여 여학생 기숙사와 체육관을 지었다. 2만평 교정은 조경협회가 선정한 ‘조경 백선(百選)’에 꼽혔다. 학교에 가보면 무슨 정원에라도 온 느낌이다.

▶상산학원 재단엔 이사가 7명인데 그 중 3명이 수학을 전공한 수학자다. 2003년엔 서울대 부총장을 지낸 수학과 이현구 교수를 교장으로 모셨다. 교감도 수학 전공이고 박사학위를 가진 수학교사가 3명 있다. 학생 중에도 수학을 잘 하는 아이들이 많다. 중학교에서 수학실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학교장으로부터 추천받아 수학특기자로 선발해 왔다.

▶홍 이사장은 작년 12월 개방형이사제가 핵심인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인터뷰에서 “학교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사립학교 설립자들이 마치 무슨 잠재적 범죄집단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시하겠다는 것이니 그럴 만도 했다. 2008년부터 내신 위주 대학입시로 자립형사립고 출신이 불이익을 받게 된 것도 상산고로선 큰일이다. 평생 모은 재산을 기울여 제대로 된 학교 하나 만들어보자는 것인데, 그런 뜻있는 일도 마음껏 할 수 없는 게 이 나라다.

(한삼희 논설위원 shh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