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외견상 거세지는 국제사회의 제재 위협 속에서도, ‘우라늄 농축’을 고집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영국의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는 23일 ‘이란 보고서’를 통해 “이란이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으로 야기된 중동의 파워 공백을 메우고, 에너지를 무기로 이 지역을 넘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만든 공백, 이란이 채워=미국의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전쟁은 역설적으로 이란이 중동의 강자로 떠오르는 도약대가 됐다. 1980년 이후 이슬람 시아파 신정(神政)정치를 하는 이란에 동쪽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 정권인 탈레반 정부와 1980년대 8년간 전쟁을 치렀던 서쪽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위협적일 수 밖에 없었다. IRIA 보고서는 "미국의 전쟁으로 탈레반과 사담 정권은 붕괴됐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정치와 문화를 활용하는 능력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서방의 중동 정책은 '무시'와 '무력 개입' 외에는 정책이 없었지만, 이란은 아랍과 비슷한 문화와 역사적 유대 관계를 이용해 중동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강자가 됐다는 것.

그 예로, 이슬람 시아파가 인구의 65%를 차지하는 이라크는 이란 민병대가 활동하는 '뒷마당'이 됐다. 또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레바논 헤즈볼라를 지원해 아랍인들의 사기를 높였다.

◆'노(No)'할 수 있는 이란의 에너지 파워=서방의 이란 제재에 필수 파트너라 할 중국·러시아·일본은 모두 이란과 밀접한 경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란 남부 부셰르에 8억 달러 규모의 중수로를 짓고 있는 러시아는 '압력' 보다는 '중재'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 수입 석유의 11%가 이란산(産)이고 100개 자국 기업이 이란에서 활동 중인 중국도 마찬가지다. 수입 석유의 15%를 이란에서 들여오는 일본이 금융 제재와 같은 연성(軟性)에서부터 강도를 차츰 높여가자고 제안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란산 석유(1일 생산량 270만 배럴)가 금수(禁輸)될 경우, 기타 산유국의 잉여 생산 능력은 110만 배럴에 불과하다"고 RIIA 보고서는 밝혔다.

◆서방의 분열 노린 이란의 핵 입장=이란은 22일 유엔 안보리 5개국과 독일이 제시한 '선(先)농축 포기-후(後)경제적 인센티브 제공'안에 대해 가부(可否)를 분명히 밝히지 않고, "진지한 협상"을 제의했다. 존 볼튼 미국 대사는 즉각 "안보리는 신속하게 제재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이란이 '협상 의사'를 계속 보이는 한, 경제 제재 논의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란으로선 모호한 대응으로 또다시 시간을 끌며, 서방의 분열을 노리는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