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한양대 교수

헌법은 정치적 법이다. 모든 법이 정치성을 벗어날 수 없지만 특히 헌법은 가장 정치성이 강한 법이다. 헌법재판 역시 정치적 재판이다. 정치적 법인 헌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 또한 정치성을 피할 수 없다. 그런 뜻에서 헌법재판의 정치적 중립성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헌법재판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망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헌법재판이 정치적 파당성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헌법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헌법재판이 정파성에 매몰된다면 정치권력을 통제해야 할 헌법은 사라지고 정치적 힘만이 남게 될 것이다.

새 헌법재판소장에 전효숙 재판관이 지명되고 헌법재판관 다섯 명의 교체가 발표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들이 적지 않다. 그것은 헌법재판이 정파적 재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특히 전효숙 재판관이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된 '파격'이 그런 염려를 더욱 짙게 만들고 있다. 이런 우려에는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실례를 보자. 전효숙 재판관을 비롯해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후 임명된 세 분의 재판관은 정치적 중요성이 각별했던 사건들에서 같은 목소리를 낸 예를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행정중심복합도시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결정에서 각하 의견을 내면서 이 세 재판관은 별개의견을 첨부하였다. 재작년 신행정수도특별법 사건에서 다수의견의 논거였던 관습헌법의 법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세 재판관이 늘 같은 의견을 낸 것은 아니다. 예컨대 논란이 많았던 지난 신문법 사건에서도 이 점은 드러난다. 신문시장 점유율 규제의 위헌여부에 관하여 위 세 분 중 한 분이 합헌의견을 낸 것과 달리 다른 두 분은 위헌의견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보면 누가 지명했는가, 지명자와 어떤 연고인가에 따라 재판관의 의견이 붕어빵 찍히듯 일사불란하게 나타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도 유별난 연고주의 사회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헌법재판소 인사를 둘러싼 걱정과 비판이 결코 근거 없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특히 헌법재판에서 위헌결정에 6인 재판관의 찬성이 필요한 점을 생각하면 항간의 우려를 가벼이 볼 것이 아니다. 4인 재판관의 '확보'로 위헌결정을 저지할 수 있는 거부권이 생기기 때문이다.

87년 이후 약 20년간의 헌정에서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는 헌법 그 자체의 정치적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헌법재판의 활성화가 가져온 결과이다. 우리의 헌법재판은 외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헌법재판소의 성공사례로 꼽혔다. 그러나 신행정수도특별법 사건을 계기로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파랑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사법 쿠데타라는 협박에 가까운 비난까지 들었다.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일부 학자들까지 헌법재판 또는 헌정주의가 반(反)민주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의 활성화는 현행헌법의 운영에서 이룬 가장 값진 성과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헌법재판은 정치권력에 대한 불신에 토대를 두고 있다. 헌법재판에 기반을 둔 새로운 입헌주의의 대두는 오늘날 선진민주주의 국가의 보편적 현상이다.

민주화의 성취로 얻은 헌법재판의 활성화를 어떻게 살려갈 것인가. 헌법재판소가 기댈 곳은 국민밖에 없다. 만일 헌법재판에서 재판관들의 의견이 정파적 소산이라는 의구심이 더욱 굳어진다면 헌법재판소의 앞날은 매우 비관적이다.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길은 달리 있을 수 없다. 헌법재판이 정파성을 뛰어넘는 정치적 중립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새 헌법재판소장 피지명자는 청문회를 통해 그런 의지를 보여줄 것인가. 그래야만 첫 여성 헌재소장 출현이 갖는 참된 의미도 살아날 수 있다.

(양건 한양대 교수·헌법학 )